2014. 1. 31.

췌취는 분산중의 통합 (역학원론 한장경 저)




췌취(萃聚)는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


췌취(萃聚)는 만물(萬物)이 각기(各其) 분산(分散)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또 성장확대(成長擴大)함이니, 만물(萬物)의 사이에 동류(同類)가 서로 결합(結合)하여 박후(博厚)하려 하고 모든 생물(生物)이 영양분(營養分)을 섭취(攝取)하여 자체(自體)를 성장(成長)시키고, 사람이 그 활동범위(活動範圍)를 넓히고 지식(知識)․기능(技能) 등(等)을 축적(蓄積)하여 자신(自身)을 부단(不斷)히 확대(擴大)하는 것 등(等)이 모두 췌취(萃聚)의 정(情)에 의(依)함이며,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췌취(萃聚)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개체(個體)로써 보면 어느 것이 분산(分散)되어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분산(分散)의 중(中)에는 스스로 각기(各其) 유(類)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만드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대(大)하기는 일월대지(日月大地)로부터, 소(小)하기는 일충(一虫) 일초(一草)에 이르기까지 모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성장(成長)한 것이니 역(易)에「方以類聚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한다」【註一】하고, 또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種其類也 = 동성(同聲)이 상응(相應)하고 동기(同氣)가 상구(相求)하고 수(水)는 습(濕)에 유(流)하고, 화(火)는 조(燥)에 취(就)하고 운(雲)은 용(龍)을 종(從)하고, 풍(風)은 호(虎)를 종(從)하고, 성인(聖人)이 작(作)하매 만물(萬物)이 도(覩)하고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하(下)를 친(親)하나니 곧 각각(各各) 그 유(類)를 종(從)함이라」【註二】 함은, 만물(萬物)이 모두 기류(其類)를 좇아서 상취(相聚)함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은 「氣之淡一淸虛者 彌滿無外之遠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 기(氣)의 담일청허(淡一淸虛)한 자(者)가 외(外)가 없는 원(遠)에 미만(彌滿)하여 취(聚)의 대(大)한 자(者)는 천지(天地)가 되고 취(聚)의 소(小)한 자(者)는 만물(萬物)이 되며, 취(聚)하고 산(散)하는 세(勢)는 은미(隱微)하고 현저(顯著)하고 구(久)하고 속(速)함이 있을 뿐이라」【註三】하여,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 기(氣)를 췌취(萃聚)하여 이루고 췌취(萃聚)한 자(者)는 반드시 분산(分散)하는데, 그 취산(聚散)하는 형세(形勢)는 물(物)의 대소(大小)에 따라서 은현구속(隱顯久速)의 차(差)가 있다 하니, 이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췌취(萃聚)가 있으면 분산(分散)이 있고 분산(分散)이 있으면 췌취(萃聚)가 있는 이(理)를 말함이다. 이 천지(天地)는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태일체(太一體)의 이외(以外)에 별구(別區)로 조직(組織)된 천지(天地)가 있을 수 없고,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따로 독립(獨立)한 일물(一物)도 있을 수 없는지라, 태일체(太一體)의 전체(全體)로써 보면 그 속에 포함(包涵)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더 증가(增加)하지도 아니하고 더 멸손(滅損)하지도 아니하고, 차(此)에 생(生)함이 있으면 피(彼)에 멸(滅)함이 있고 차(此)에 소(消)함이 있으면 피(彼)에 장(長)함이 있으니 이가 소위(所謂) 우주(宇宙)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한편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가 있으므로 써 다른 한편에 췌취(萃聚)되는 통체(統體)가 있는 것이니 이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이 곧 췌취(萃聚)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후계자(後繼者)를 생성(生成)하면서 자체(自體)가 스스로 노쇠(老衰)로 향(向)하고 모든 동물(動物)이 식물(植物)을 식료(食料)로 하면서 또 자체(自體)가 죽어서 토중(土中)에 귀장(歸藏)하고 공중(空中)에 유산(遊散)하여 다시 식물(植物)의 양분(養分)이 되는 것 등(等)이 모두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함이다.


그런데 감응(感應)과 췌취(萃聚)는 모두 아(我)와 타(他)의 서로 응여(應與)하는 작용(作用)이로되, 그 상이(相異)한 바는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과의 사이에 행(行)하여 괴위(乖違)한 체(體)로 써 서로 응여(應與)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오, 췌취(萃聚)는 분산(分散)된 여러 개체(個體)가 서로 응여(應與)하여 통체(統體)를 성육확대(成育擴大)함이니, 가정(家庭)의 예(例)로 써 보면 부부(夫婦)가 상배(相配)하여 자손(子孫)을 생(生)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부(夫婦)․부자(父子)․형제(兄弟) 등(等)이 취합(聚合)하여 가족(家族)이라는 집단(集團)을 구성(構成)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며, 사회(社會)로써 보면 행정부원(行政府員)과 민중(民衆)의 마음이 서로 감응(感應)하여 상하(上下)의 지(志)가 상통(相通)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사상(思想)이 동일(同一)한 동지(同志)가 상합(相合)하여 단체(團體)를 조직(組織)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다. 지금 우리가 남북(南北)으로 양단(兩斷)된 국토(國土)와 각분(各分)된 동포(同胞)를 통일(統一)하려 하는 것은 우리 민족(民族)의 생존상(生存上) 스스로 발로(發露)치 아니할 수 없는 췌취(萃聚)의 정(情)이며 아국(我國)의 삼국초기(三國初期)로부터 야전공성(野戰攻城)의 싸움이 자못 허일(虛日)이 없은 것은, 평화(平和)를 애호(愛好)하는 우리 선조(先祖)들에게 상무(尙武)․호전(好戰)의 기풍(氣風)이 있어서가 아니오. 실(實)로 췌취작용(萃聚作用)에 의(依)한 민족통일(民族統一)운동(運動)의 한 산물(産物)이다. 【註四】

점지진의 리((漸之進理) (역학원론 한장경 저)



점지진(漸之進)의 리(理)

물(物)이 췌취(萃聚)하는 자(者)는 생장(生長)이 되고 분산(分散)하는 자(者)는 소멸(消滅)이 되나니, 모든 생물(生物)이 정(精)과 기(氣)가 취합(聚合)하면 생(生)이 되고 그것이 서로 유리(遊離)하면 사(死)가 되며 사회(社會)도 민중(民衆)의 개체(個體)가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구성(構成)한 것이므로 민심(民心)이 췌취(萃聚)하는 사회(社會)는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여 흥왕(興旺)하고 민심(民心)이 이산(離散)하는 사회(社會)는 생기(生氣)가 소침(銷沈)하여 쇠약(衰弱)하며, 단체(團體)같은 것도 구성원(構成員)의 인심(人心)이 취합(聚合)하면 조직(組織)이 강고(强固)하고 인심(人心)이 분산(分散)하면 스스로 해체(解體)가 되는 것이니, 지금에 흔히 쓰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어(俗語)도 또한 이 췌취(萃聚)의 이(理)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성장(成長)함에는「점지진(漸之進)」【註五】의 이(理)가 있으니 점지진(漸之進)이라 함은 물(物)의 성장(成長)이 점(漸)을 따라서 승진(升進)한다 함이라, 역(易)에 「聚而上者 謂之升 = 취(聚)하여 상(上)하는 자(者)를 승(升)이라 이른다」하고, 또『地中生木升 君子以 積小而高大 = 지중(地中)에 목(木)이 생(生)함이 승(升)이니 군자(君子)가 써 하여 소(小)를 적(積)하여 써 고대(高大)한다」【註六】하니, 이는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생장(生長) 상승(上升)함은 지중(地中)에서 수목(樹木)이 생(生)하여 점승(漸升)하는 상(象)과 같은데, 승(升)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상진(上進)하는 것이니, 사람이 사업(事業)을 행(行)함에는 이 상(象)을 본받아서 소(小)를 취적(聚積)하여 점차(漸次) 고대(高大)로 승진(升進)하여야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장(生長)은 자체(自體)의 능동력(能動力)으로 써 일정(一定)한 순서(順序)와 시간(時間)을 경과(經過)하여 점진(漸進)치 아니하면 안되고, 비록 동식물(動植物) 같은 것을 속성양육법(速成養育法)으로 써 그 생장기간(生長期間)을 다소(多少) 단축(短縮)할 수는 있으되, 역시(亦是) 점진(漸進)하여 어느 기간(期間)을 경과(經過)치 아니하면 안되고, 사람의 사업(事業)이나 사회(社會)의 건설(建設)같은 것도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췌취(萃聚)치 아니하면 안된다. 그러나 물(物)의 소산(消散)함은 능동력(能動力)을 상실(喪失)하고 수동(受動)의 지위(地位)에 입(立)하는 것이므로, 비록 성장(成長)하는 능동과정(能動過程)에 있다 하더라도 혹시(或是) 강대(强大)한 외력(外力)의 침해(侵害)를 받는 때는 곧 수동(受動)으로 변(變)하여 저항력(抵抗力)을 상실(喪失)하고 장세월간(長歲月間)의 생장(生長)한 사공(事功)이 일조(一朝)에 소진(消盡)하는 일이 있는 것이니, 이가 소(小)하기는 일신일가(一身一家)로 부터 대(大)하기는 일국가(一國家)에 이르기까지 건설(建設)되기는 어렵고 파괴(破壞)되기는 쉬운 소이(所以)이다.

더욱이 본능(本能)에는 제한(際限)이 없는지라, 사람이 체력(體力)을 더 증강(增强)하고 지식(知識)을 더 습득(習得)하고 재화(財貨)을 더 축적(蓄積)하고 지위(地位)를 더 향상(向上)하려 하는 등(等)의 췌취작용(萃聚作用)에는 항상(恒常) 분산작용(分散作用)이 수반(隨伴)하고 있으므로 일면(一面)으로는 그 분산(分散)되는 부면(部面)을 보급(補給)하고 일면(一面)으로는 점진적(漸進的)으로 새로운 성장확대(成長擴大)를 도모(圖謀)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 까닭에 삼본능(三本能) 중(中)에 췌취작용(萃聚作用)이 가장 간험(艱險)과 위난(危難)이 많고 또 가장 다대(多大)한 노력(努力)을 요(要)하는 것이다.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의 췌취(萃聚)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의 췌취(萃聚)


췌취작용중(萃聚作用中)에 가장 긴중(緊重)한 것은 식물(食物)의 췌취(萃聚)이니 식물(食物)은 일일(一日)에 재식(再食)치 아니하면 기아(飢餓)하고, 기아(飢餓)가 정도(程度)를 넘으면 생명(生命)을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일상활동(日常活動)하는 시간(時間)과 노력(努力)의 대부분(大部分)이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에 소비(消費)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食物)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사람이 췌취(萃聚)하고 식물(食物)이 없으면 사람이 이산(離散)하나니, 역(易)에「何以聚人曰 財 = 무엇으로 써 사람을 취(聚)할고, 가로되 재(財)라」【註七】 함은 재(財)가 있는 곳에 사람이 취(聚)함을 말함이오, 이 까닭에 고래(古來)로 국가정책중(國家政策中)에 재정경리(財政經理)가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易)에는 고대성인(古代聖人)이 괘상(卦象)을 취(取)하여 재(財)를 경리(經理)함을 말하되 「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斲木爲耟 揉木爲耒 耒耨之利 以敎天下 日中爲市 致天下之民 聚天下之貨 交易而退 各得其所 刳木爲舟 剡木爲楫 舟楫之利 以濟不通 致遠以利天下 服牛乘馬 引重致遠 以利天下 斷木爲杵 掘地爲臼 臼杵之利 萬民以濟 = 결승(結繩)을 지어 그물을 만들어 써 사냥하고 써 고기를 잡으며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굽혀 따비를 만들어 뇌누(耒耨)의 이(利)로써 천하(天下)를 가르치며, 일중(日中)에 시장(市場)을 만들어 천하(天下)의 민(民)을 이르게 하고 천하(天下)의 재화(財貨)를 모여서 교역(交易)하여 물러가서 각각(各各) 그 소(所)를 얻게 하며,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노를 만들어 주즙(舟楫)의 이(利)로 써 불통(不通)함을 건너고 원방(遠方)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움을 이끌고 먼 곳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나무를 끊어서 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호악을 만들어 구저(臼杵)의 이(利)로 만민(萬民)이 써 제(濟)한다」【註八】하니, 그물은 수렵(狩獵)과 어업(漁業)이오. 뇌누(耒耨)는 농업(農業)이오, 시장(市場)은 교역(交易)이오, 주즙(舟楫)과 우마(牛馬)는 수송(輸送)과 무역(貿易)이오, 저구(杵臼)는 정미(精米)이라, 이는 고대(古代) 성인(聖人)이 민생(民生)에 필수(必需)한 물자(物資)와 기용(器用)을 풍후(豊厚)하게 하기 위(爲)하여 기물(器物)을 발명(發明)하고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역(易)에는 그물․농구(農具)․주즙(舟楫)․저구(杵臼) 등(等)의 기물(器物)을 제작(製作)하고, 교역(交易)․교통(交通) 등(等)의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에 있어서 대개(大槪) 괘상(卦象)을 취(取)함이라 하고, 또 「以制器者 尙其象 = 써 기(器)를 제(制)하는 자(者)는 그 상(象)을 상(尙)한다」【註九】한바, 예(例)컨대 그물은 이괘(離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농구(農具)는 익괘(益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주즙(舟楫)은 환괘(渙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우마(牛馬)는 수괘(隨卦)의 象을 取하고, 杵臼는 小過卦의 象을 取하고, 市場은 噬嗑卦의 상(象)을 취(取)함이라 하나, 그 상(象)을 여하(如何)히 취(取)한지(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아니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물(器物)과 제도(制度)가 지금으로 보면 극(極)히 용이(容易)한 일이나, 고대(古代)에 있어서는 모두 당세(當世)의 큰 발명품(發明品)이오, 또 괘상중(卦象中)에 아직 발견(發見)되지 아니한 우주(宇宙)의 비밀(秘密)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 중요(重要)한 췌취작용(萃聚作用)은 학문(學問)의 췌취(萃聚)이니, 이는, 사람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로써 구성(構成)되고 있으므로 식물(食物)로써 육체(肉體)를 양(養)하고 학문(學問)으로써 정신(精神)을 양(養)하는 까닭이다. 자체(自體)가 생존(生存)하기 위(爲)하여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에 필요(必要)한 학문(學問)을 배움은 물론(勿論)이오, 나아가서 일세(一世)를 운영(運營)하는 경륜(經綸)도 이 학문(學問)에서 나오고 공간(空間)의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여 자연계(自然界)를 개척(開拓)하고, 시간(時間)의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행(前行)함과 같은 큰 지혜(知慧)도, 모두 학문(學問)에서 나오는 것이니,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이 일상(日常)의 대욕(大欲)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대욕(大欲)임과 같이, 학문(學問)의 학습(學習)도 일상(日常)의 공부(工夫)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공부(工夫)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 분(憤)을 발(發)하매 식(食)을 망(忘)하고 낙(樂)하매 우(憂)를 망(忘)하여 노(老)의 장지(將至)함을 알지 못한다」【註十】함은, 학문(學問)하기 위(爲)하여 음식(飮食)을 잊는 때가 있고 연수(年數)의 부족(不足)함을 깨닫지 못함을 말함이니, 이는 학문췌취(學問萃聚)의 정(情)에는 공간(空間)의 제한(制限)도 없고 시간(時間)의 계선(界線)도 없고 인생(人生)의 일생(一生) 정열(情熱)로 되는 까닭이다.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의 췌취(萃聚) (역학원론 한장경 저)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의 췌취(萃聚)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를 췌취(萃聚)하는 것도, 자체(自體)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는 것이므로 또한 췌취본능(萃聚本能)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은 아(我)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을 양(養)하여 아(我)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고 또 아(我)와는 분산(分散)되지 아니함으로 그 성장확대(成長擴大)에 한계(限界)가 없으니, 이는 아(我)의 진실(眞實)한 소유물(所有物) 즉(卽) 진유(眞有)이지만,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어느 때던지 아(我)와 분산(分散)할 수 있는 것으로서,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에 의(依)한 성장확대(成長擴大)는 마치 고제(高梯)에 올라서 키가 높아지고 장검(長劍)을 휘둘러서 힘이 커짐과 같으니, 일조(一朝)에 그 고제(高梯)와 장검(長劍)을 없이하면, 일세소(一細小)한 필부(匹夫)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이러한 것은 진유(眞有)가 아니오 모두 일시(一時) 차래(借來)한 가성장(假成長)․가확대(假擴大)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재화(財貨)의 췌취(萃聚)에는 계한(界限)된 분(分)이 있으니 만일 분(分)을 넘으면 박약(薄弱)한 기초(基礎)위에 거대(巨大)한 상층구조(上層構造)를 건축(建築)함과 같은 대과(大過)의 상(象)이 되어, 그 반대방향(反對方向)인 전복(顚覆)으로 향(向)하여 도리어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해(害)하나니, 고래(古來)로 취권(聚權)․축재(蓄財)에 과분(過分)한 욕심(慾心)을 부리다가 패가(敗家)․망신(亡身)한 자(者), 그 예(例)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권세(權勢), 재화(財貨) 등(等)의 췌취(萃聚)가 분(分)을 초과(超過)함을 영(盈)이라 하고 분(分)에 도달(到達)치 아니함을 겸(謙)이라 하나니, 역(易)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고 겸(謙)을 익(益)하며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하며 귀신(鬼神)은 영(盈)을 해(害)하고 겸(謙)을 복(福)하며 인도(人道)는 영(盈)을 싫어하고 겸(謙)을 좋아한다」【註十一】함은, 월(月)은 망(望)하면 휴(虧)하고 휴(虧)하면 다시 망(望)하며, 지세(地勢)는 준고(峻高)한 者가 경괴(傾壞)하고 저평(低平)한 자(者)가 증고(增高)하며, 귀신(鬼神)은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공겸(恭謙)한 자(者)를 복(福)하며, 인정(人情)은 거만(倨慢)한 자(者)를 미워하고 겸양(謙讓)한 자(者)를 좋아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천(天) 지(地) 인(人) 귀(鬼)가 모두 영(盈)함을 경복(傾覆)하고 겸(謙)에 취귀(聚歸)함이다.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대세(大勢)의 추향(趨向)하는 방향(方向)으로 진행(進行)하는 것이라, 물(物)이 이미 영일(盈溢)하여 더 가입(可入)할 여유(餘裕)가 없는 때는 오직 경복감휴(傾覆減虧)의 길이 있을 뿐이며, 겸(謙)은 비하(卑下)함이니 비하(卑下)한 자(者)는 증익(增益)은 있으되 경복(傾覆)은 없나니, 이가 휴영익겸(虧盈益謙)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므로 역(易)에「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語以其功下人者也 = 노(勞)하되 자랑치 아니하고 공(功)이 있으되 덕(德)치 아니함은 후(厚)함의 지극(至極)함이니 그 공(功)으로 써 사람에게 하(下)함을 말함이라」【註十二】하여, 노겸(勞謙)하는 사람은 비록 큰 공로(功勞)가 있으되 덕색(德色)을 내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그 공로(功勞)로 써 사람의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한다 함을 찬양(讚揚)하니, 겸겸양양(謙謙讓讓)하여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하는 까닭에 분(分)을 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심(人心)과 중망(衆望)이 췌취(萃聚)하여 공로(功勞)가 더욱 빛나고 지위(地位)가 더욱 향상(向上)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계반급(一階半級)의 관직(官職)에 의기(意氣)가 양양(揚揚)하고 기미(驥尾)에 붙어서 돌연(突然)출세(出世)하여 자만(自滿)자명(自鳴)함과 같은 것은, 그 양(量)이 적어서 일이배수(一二盃水)에 이미 분(分)을 넘어 영일(盈溢)하여 더 췌취(萃聚)할 수 없는 소기국(小器局)이다. 이와 같이 체력(體力)이나 학문(學問)같은 것은 아(我)의 신체(身體)를 구성(構成)한 것으로서 진실(眞實)로 아(我)의 소유물(所有物)이 되고 있으나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일시(一時) 차래(借來)하여 아(我)의 임시(臨時) 관리물(管理物)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유명(有名)한 「이곡(利穀)」차마설(借馬說)에는 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 婦之於夫 婢僕之於主 其所借 亦深且多 率以爲己有 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則 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耶 = 사람의 소유(所有)한 것이 어느 것이 차(借)하지 아니한 자(者)인고, 군(君)은 역(力)을 민(民)에게서 차(借)하여 써 존(尊)하고 부(富)하고, 신(臣)은 세(勢)를 군(君)에게서 차(借)하여 써 총귀(寵貴)하고 자(子)의 부(父)에게서, 부(婦)의 부(夫)에게서, 비복(婢僕)의 주(主)에게서, 그 차(借)한 바가 또한 심(深)하고 또 다(多)하거늘, 다 써 자기(自己)의 가짐이라 하여 마침내 성(省)치 못하니 어찌 혹(惑)함이 아니리오, 진실(眞實)로 혹(或) 잠깐사이에 그 차(借)한 바를 돌려주면 만방(萬邦)의 군(君)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가(家)도 고신(孤臣)이 되거늘, 하물며 적은 자(者)이랴」【註十三】하니, 이는 일국(一國)의 군주(君主)가 극존극부(極尊極富)하는 것도 일시(一時) 국민(國民)의 역(力)을 차용(借用)하는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며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위세호강(威勢豪强)하는 것도 일시(一時) 군주(君主)의 세력(勢力)을 차용(借用)한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다. 아들이 아비의 세력(勢力)을 의시(依恃)하고 처(妻)가 남편(男便)의 세력(勢力)을 빙자(憑藉)하고, 부하(部下)가 주인(主人)의 세력(勢力)을 배경(背景)으로 하는 것 등(等)은 모두 일시(一時) 차용(借用)하는 것이다.

만일 혹시(或是) 일조(一朝)에 정세(情勢)가 변화(變化)하여, 인군(人君)도 국민(國民)의 지지(支持)를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독부(獨夫)가 되고, 권신(權臣)도 군주(君主)의 신임(信任)을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소민(小民)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그 이하(以下)의 미물(微物)․세물(細物)․두승인(斗升人)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함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를 잡으면 겸양(謙讓)하고, 부(富)하면 예(禮)를 좋아 할 것이오, 분(分)을 넘어 교영(驕盈)하면 마침내 패(敗)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乾卦文言
註三.「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

註四. 삼국(三國)이 건국(建國)되기 이전(以前)에는 수다(數多)한 부락(部落)이 각지(各地)에 산재(散在)하여 일산(一山)의 장색(障塞)과 일수(一水)의 격조(隔阻)도 스스로 한 부락국가(部落國家)를 이루어, 남방(南方)의 삼한(三韓) 지역(地域)에 만도 칠십팔국(七十八國)이라는 많은 나라가 분립(分立)하고 북방(北方)의 부여(扶餘), 옥저(沃沮) 등(等) 지방(地方)에도 불소(不少)한 부락국가(部落國家)가 있어, 서로 부락간(部落間)의 쟁투(爭鬪)가 그치지 아니하되, 이들 부락(部落)의 연합국형식(聯合國形式)으로 구성(構成)된 총왕(總王) 또는 대군장(大君長)은 이를 통어(統御)할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이때에 부여(扶餘)의 졸본부락(卒本部落)에서 「고주몽(高朱夢)」이 일어나서 고구려국(高句麗國)을 세우고 마한(馬韓)의 백제부락(百濟部落)에서 「부여온조(扶餘溫祚)」가 일어나서 백제국(百濟國)을 세우고 진한(辰韓)의 사로부락(斯盧部落)에서「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일어나서 신라국(新羅國)을 세우니, 이들은 모두 일세(一世)의 영걸(英傑)이라, 그 건국리상(建國理想)이 또한 모두 전국토(全國土)와 전민족(全民族)을 통일(統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써서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의 국가(國家)를 수립(樹立)함에 있은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三國)은 건국초기(建國初期)로부터 부근(附近)의 부락(部落)을 점차(漸次)로 병합(倂合)하여 군현(郡縣)을 만들고 그 경역(境域)을 확장(擴張)하던 중(中)에 고구려(高句麗)는 종래(從來) 중국(中國)에 빼앗긴 고토(故土)를 수복(收復)하려 하여 한국(漢國)과의 사이에 격전(激戰)이 전개(展開)되고,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하나는 남진(南進)하고 하나는 북진(北進)하다가 지금의 충청(忠淸)․전라(全羅)․경상(慶尙)의 삼도(三道) 접경지방(接境地方)에서 상우(相遇)하여 비로소 전단(戰端)을 개시(開始)하고, 고구려(高句麗)가 낙랑지방(樂浪地方)을 수복(收復)한 후(後)에 또한 남하(南下)하여 서로 전국통일(全國統一)을 목표(目標)로하고 삼각(三角)의 혼전상태(混戰狀態)를 이룬 것이다. 신라(新羅)는 마침내 당병(唐兵)을 청래(請來)하여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를 멸(滅)하니, 신라(新羅)의 왕조(王朝)를 본위(本位)로 하여보면 혹시(或是) 그러할 수도 있는 일이나, 당초(當初)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이념(理念)으로써 보면 겨우 대동강(大洞江) 이남(以南)의 지역(地域)을 차지하여 일소국(一小國)을 보유(保有)하고 북계(北界) 전역(全域)을 상실(喪失)한 것은, 안전(眼前)의 소리(小利)를 탐(貪)하여 위대(偉大)한 이상(理想)을 포기(抛棄)한 것이다. 그 후(後)에 비록 발해(渤海)가 일어나서 고구려(高句麗)구강(舊疆)을 차지하나, 이로부터 남북국(南北國)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유대(紐帶)가 끊어져서 다시 췌취(萃聚)할 기회(機會)를 가지지 못하고 영원(永遠)한 분산(分散)을 재래(齎來)한 것이다.
註五. 漸卦彖傳
註六. 序卦傳下篇에「聚而上者謂之升」이 있고 「地中生木」以下는 升卦 大象傳에 있다
註七. 繫辭下傳 第一章
註八. 繫辭下傳 第二章
註九.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 論語 述而篇
註十一. 謙卦彖傳
註十二. 繫辭上傳 第八章
註十三. 東文選

  

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역학원론 한장경 저)

‣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

항구(恒久)는 만물(萬物)이 그 발용(發用)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서 그 안정체(安貞體)의 영구존존(永久存存)을 도(圖)함이니,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에 관성(慣性)이 있고, 생물(生物)이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수명(壽命)의 영원(永遠)함을 도모(圖謀)하는 것 등(等)이, 모두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항구존속(恒久存續)의 길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하나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대지(大地)의 운행속도(運行速度) 같은 것도 미세(微細)하나마 매년(每年) 변화(變化)하고 있고, 산천초목(山川草木)같은 것이 변화(變化)함은 물론(勿論)이오, 조석(潮汐)의 고저(高低) 사람의 체질(體質)같은 것도 고금(古今)이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우리 국문(國文)같은 것도 창제(創製)하던 당시(當時)에는 이십팔자(二十八字)를 쓰더니 지금에는 이십사자(二十四字)로서 충분(充分)하고 여외(餘外)의 사자(四字)는 사용(使用)치 아니하여도 별(別)로 장해(障害)가 없는 것은, 우리의 순설후아(唇舌喉牙)의 형상(形象)과 동작(動作)이 오백년(五百年) 전(前)보다 변화(變化)한 소치(所致)이다. 이와 같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는 오직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대지(大地)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그 원체(原體)가 역시(亦是) 대지(大地)임에는 변(變)함이 없고,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도수(度數)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주야(晝夜)가 교대(交代)하고 사시(四時)가 순환(循環)하는 그 사실(事實)은 매일매년(每日每年)을 틀림이 없고,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수야모야(誰也某也)는 출생이후(出生以後)에 노령(老齡)에 이르기까지 일변월화(日變月化)하여 황구청춘(黃口靑春)이 쇠안백발(衰顔白髮)로 되어 다시 구시(舊時)의 형용(形容)이 없으되, 수야모야(誰也某也)라는 사람은 일생(一生)을 동일인(同一人)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이 곧 항구(恒久)이며 지금의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여러 가지의 물(物)을 종합(綜合)하여 어떠한 원리원칙(原理原則)을 정(定)하나니 이 원리원칙(原理原則)이 또한 항구(恒久)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있어 안정(安貞)은 항구(恒久)하려 하고 발용(發用)은 변화(變化)하려 함으로, 항구(恒久)는 존존(存存)이니 체(體)가 되고 변화(變化)는 생생(生生)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있으므로 써 용(用)이 의착(依着)할 곳을 얻어서 물(物)의 운동(運動)이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밟아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므로 써 체(體)가 고무력(鼓舞力)을 얻어서 물(物)이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항구(恒久)히 계승(繼承)하나니, 만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일월(日月)같은 것도 궤도(軌道)가 혼란(混亂)하여 한서(寒暑)와 주야(晝夜) 등(等)이 질서(秩序)를 잃고 신(信)이 없을 것이오, 또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없으면 사시(四時)가 질운(迭運)치 아니하고 주야(晝夜)가 교대(交代)치 아니하여 생육(生育)의 공(功)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구(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한다」【註一】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계속(繼續)하여 항구(恒久)한 체(體)가 됨을 말함이오, 또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 일월(日月)이 천(天)을 득(得)하여 능(能)히 구조(久照)하고 사시(四時)가 변화(變化)하여 능(能)히 구성(久成)한다」【註二】하니, 이는 일월(日月)이 천도(天道)를 순(順)하여 항상(恒常) 왕래영허(往來盈虛)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조림(照臨)하고 사시(四時)가 항상(恒常) 왕래변화(往來變化)하여 일한일서(一寒一暑)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생성(生成)하여 만물(萬物)을 일신(日新)하는 용(用)이 됨을 말함이다.

그런데 모든 사물(事物)이 항구(恒久)한즉 염증(厭症)이 생(生)하나니, 일신(一身)의 굴신좌립(屈伸坐立)같은 것도 동일(同一)한 상태(狀態)를 오래 계속(繼續)치 못함이 그 일례(一例)이오, 오직 만물(萬物)의 본능(本能)만은 항구(恒久)하여도 염(厭)치 아니하나니, 사람이 생명(生命)의 장수(長壽)를 염(厭)하는 자(者)가 없고 음식(飮食)이나 부부생활(夫婦生活)을 염(厭)하는 자(者)가 없는 것이 곧 그것이니, 역(易)에「恒雜而不厭 = 항(恒)은 잡(雜)하되 염(厭)치 아니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한 체(體)는 구(久)하되 염(厭)치 아니하나니, 음식(飮食)의 예(例)로써 보면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부식(副食)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러므로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히 먹어도 염(厭)치 아니하나, 부식(副食)은 동일물(同一物)을 장복(長服)하면 스스로 염(厭)하여 지는 것이다.

진화론(進化論)과의 관계(關係) (역학원론 한장경 저)

진화론(進化論)과의 관계(關係)

지금에 소위(所謂) 진화론(進化論)이 있어 최초(最初)에 어느 단세포(單細胞)가 진화(進化)하여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等)으로부터 원류(猿類) 인류(人類)에 이르기까지 진화(進化)한 것이라고 하는데, 역리(易理)로써 보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는 항구(恒久)한 체(體)오 생장(生長)․노사(老死)․유전(遺傳)․변이(變異) 등(等)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 용(用)이 비록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화(變化)를 생(生)하더라도, 그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있는 종자(種子)의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는 그 용(用)이 아무리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체(體)는 역시(亦是)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로서 조수(鳥獸)로 진화(進化)할 수 없고, 원종(猿種)의 변화(變化)가 아무리 경이적(驚異的)이라 하더라도 그 체(體)는 종시(終是) 원종(猿種)에 불과(不過)하여 그것이 인류(人類)의 종자(種子)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대지(大地)가 처음으로 물(物)을 생(生)하던 때를 「천조초매(天造草昧)」【註四】라 하는데, 천(天)의 기(氣)의 속에는 처음부터 만물(萬物)의 종자(種子)가 함유(含有)되어 있어, 이것이 대지(大地)에 의착(依着)하여 생장(生長)한 것이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양성(陽性)의 체중(體中)에 장재(藏在)함과 같음이오, 양성(陽性)인 천(天)의 기(氣)는 만물(萬物)을 자시(資始)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종자(種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인 지(地)의 정(精)은 만물(萬物)을 자생(資生)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양성(陽性)으로부터 종자(種子)를 승수(承受)하나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양성(陽性)은 정자(精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은 양정(陽精)을 승수태육(承受胎育)함과 같으니, 역(易)에 천(天)과 양(陽)의 작용(作用)을 건(乾)이라 하고 지(地)와 음(陰)의 작용(作用)을 곤(坤)이라 하여「大哉乾元 萬物資始 至哉坤元 萬物資生 = 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하고, 지(至)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생(生)한다」【註五】하고, 또 「乾知大始 坤作成物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한다」【註六】하니, 원(元)이라 함은 물(物)의 시초(始初)하는 단(端)이라, 이는 모두 양성(陽性)은 물(物)을 처음으로 시(始)하고, 음성(陰性)은 처음으로 작성(作成)하여 생(生)함을 말함이다. 천조초매기(天造草昧期)에는 뇌우(雷雨)의 동(動)이 만영(滿盈)하여 이 대지(大地)는 전(全)혀 뇌우중(雷雨中)에 포재(包在)되어 있으므로 능(能)히 그 승수(承受)한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하니, 이 뇌우만영(雷雨滿盈)한 대지(大地)의 환경(環境)이 곧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한 요건(要件)이며,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체액중(體液中)에서 생육(生育)함과 같으니, 역(易)에「屯者盈也 屯者物之始生也 = 둔(屯)이라 함은 영(盈)함이니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이라」【註七】한바,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한 괘명(卦名)으로서 천지간(天地間)에 만물(萬物)이 만영(滿盈)하는 뜻을 말함이오, 또「屯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 둔(屯)은 뇌우(雷雨)의 동(動)함이 만영(滿盈)함이니 천조초매(天造草昧)라」【註八】하니, 이는 대지(大地)가 물(物)을 시생(始生)하는 초기(初期)에 뇌우(雷雨)가 천지간(天地間)에 만영(滿盈)하고 천운(天運)이 초창(草創)하여 잡란명매(雜亂冥昧)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천지초매기(天地草昧期)에 어느 일물(一物)이나 또는 어느 일종류(一種類)가 먼저 발생(發生)하고 그것이 진화(進化)하여 분기성형(分岐成形)된 것이 아니오, 마치 천지간(天地間)에 수다(數多)한 원소(元素)가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존재(存在)함과 같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처음부터 각기독자(各其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천(天)의 기(氣)의 속에 함재(含在)하면서 천지이기(天地二氣)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그 본형(本形)대로 발육(發育)한 것이니, 원소(元素)가 항구(恒久)한 체(體)임과 같이 종자(種子)도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이다.

더욱이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이(理)로써 보건대, 원소(元素)를 존존(存存)하는 체(體)라고 하면 종자(種子)는 생생(生生)하는 용(用)이라. 원소(元素)가 어느 일물(一物)이 진화(進化)하여 다종다류(多種多類)로 분기(分岐)된 것이 아님으로, 종자(種子)도 또한 원소(元素)와 대대(對待)하여 처음부터 각종각류(各種各類)가 분립(分立)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양존(兩存)하여, 만물(萬物)은 이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하면서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면서 항구(恒久)하여, 영원(永遠)히 기성(旣成)한 형태(形態)와 세력(勢力)을 유지(維持)하려 하는 관성(慣性)이 있는 동시(同時)에 또한 시(時)와 환경(環境)의 변화(變化)에 적의(適宜)히 적응(適應)하여 일신(日新)하려 하는 적응성(適應性)이 있으니, 관성(慣性)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적응성(適應性)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이 곧 물(物)의 항구(恒久)하는 소이(所以)이다.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체용(體用)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고 있으므로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니 예(例)컨대 사람에는 황인종(黃人種)․백인종(白人種)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고 또 황인종중(黃人種中)에도 몽고족(蒙古族)․한족(漢族) 등(等)이 있고 백인종중(白人種中)에도 여러 민족(民族)이 있는데, 사람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여러 종족(種族)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진화(進化)하고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항구(恒久)한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여 인류(人類)의 범위(範圍)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종족(種族)을 초월(超越)하여 공통(共通)한 생활(生活)을 영위(營爲)하면서 함께 영원(永遠)히 생생존존(生生存存)할 수 있는 기초조건(基礎條件)이다.

지금에 민족(民族)이라는 것이 있는데 민족(民族)과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관계(關係)는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와 같은 것으로서, 민족(民族)은 체(體)이오,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용(用)이다. 그러나 역리(易理)로써 보면 족(族)이라 함은 다만 동류(同類)가 취합(聚合)함에 불과(不過)하여 통일(統一)이라는 뜻이 없으므로 민족(民族)도 또한 통체(統體)를 이룬 것이 아니오, 그것이 국가(國家)를 형성(形成)하는 때에 비로소 자력(自力)으로 생존(生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사이에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民族)은 국가(國家)를 가진 연후(然後)에 항구(恒久)한 체(體)가 되는 것이다.
  

항구(恒久)는 생존(生存)의 기초(基礎) (역학원론 한장경 저)

항구(恒久)는 생존(生存)의 기초(基礎)

우리 인생(人生)은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착종(錯綜)한 속에 살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고왕금래(古往今來)로 많은 사람들은 천지(天地)의 항구(恒久)한 체(體)의 면(面)을보고 천지(天地)의 유구(悠久)함을 부러워하며, 인생(人生)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의 면(面)을 보고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한탄(恨歎)한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는 만고(萬古)의 절창(絶唱)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항구(恒久)와 변화(變化)의 뜻을 부영(賦詠)한 것이니 그 글에「羡長江之無窮 = 장강(長江)의 무궁(無窮)함을 이(羡)한다」함은, 고금(古今)이 여일(如一)하게 끝없이 흐르고 있는 장강(長江)의 항구(恒久)한 체(體)를 부러워 한 것이오, 「哀吾生之須臾 = 우리 인생(人生)의 수유(須臾)함을 애(哀)한다」함은, 이 세상(世上)에 역려과객(逆旅過客)과 같이 잠래선거(暫來旋去)하는 우리 인생일세(人生一世)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을 슬퍼한 것이며, 또 「自其變者而觀之則 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 物與我 皆無盡也 = 그 변(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천지(天地)도 능(能)히 일순(一瞬)치 못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진(盡)함이 없다」함은, 그 변화(變化)하는 면(面)으로 보면 우리 인생(人生)뿐만 아니라 천지(天地)와 장강(長江)도 또한 일순간(一瞬間)의 정지(停止)함도 없이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면(面)으로 보면 천지(天地) 장강(長江)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人生)도 또한 항구(恒久)한 것이라 하여, 변화(變化)의 속에 항구(恒久)가 있고 항구(恒久)의 속에 변화(變化)가 있음을 말함이다.

인생(人生)과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있어서 항구(恒久)의 체(體)라 함은 상수(常守)할 규모(規模)와 상처(常處)할 거지(居地)를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말에「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善夫 = 남인(南人)이 말을 두어 가로되 인(人)이 항(恒)이 없으면 가(可)히 써 무의(巫醫)를 작(作)치 못한다하니 선(善)한저」【註九】하니, 이는 남방인(南方人)의 속담(俗談)에 사람이 항구(恒久)한 조수(操守)가 없고 사변사개(乍變乍改)하면 인명(人命)을 치료(治療)하는 무의(巫醫)가 될 수 없다하니 그 말이 선(善)하다. 항(恒)이 없으면 무의(巫醫)도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일국(一國)의 인명(人命)을 담임(擔任)하는 위정자(爲政者)가 항(恒)이 없어서야 될 수 있으랴 함을 말함이오, 또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雖乎有恒矣 = 선인(善人)을 내가 얻어 볼 수 없으니 항(恒)이 있는 자(者)를 얻어 보아도 가(可)하리라, 없으되 있는 척하고 허(虛)하되 영(盈)한 척하고 적으되 많은 척하면, 항(恒)이 있기 어렵다」【註十】하니, 항(恒)은 만사(萬事)의 기반(基盤)이라 기반(基盤)이 공고(鞏固)한 연후(然後)에 인격(人格)도 수양(修養)되고 덕업(德業)도 진취(進就)되는 것이오, 항(恒)이 없는 사람은 경조(輕躁) 부박(浮薄)하여 외면(外面)만을 꾸미고 실천(實踐)이 없음을 말함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도 항(恒)이 있어야 하나니, 역(易)에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 부(父)가 부(父)하고 자(子)가 자(子)하고 형(兄)이 형(兄)하고 제(弟)가 제(弟)하고 부(夫)가 부(夫)하고 부(婦)가 부(婦)하면 가도(家道)가 정(正)하고 가도(家道)를 정(正)하매 천하(天下)가 정(定)한다」【註十一】하여, 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가 모두 자기(自己)의 지킬 바의 상도(常度)와 자기(自己)의 맡은 바의 상직(常職)을 어기지 아니하면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하고, 국민(國民) 개개(個個)의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면 천하(天下)가 안정(安定)한다 함을 말하고, 또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기 위(爲)하여는 「言有物而行有恒 = 언(言)이 물(物)이 있고 행(行)이 항(恒)이 있다」【註十二】하니, 물(物)이라 함은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그 언사(言辭)는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을 차리고 그 행동(行動)은 항구(恒久)한 상도(常度)와 일정(一定)한 법칙(法則)이 있은 연후(然後)에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한다 함이니. 이 글의 대지(大旨)는 천하(天下)의 안정(安定)함은 일가(一家)의 정제(正齊)로부터 시작(始作)하고, 일가(一家)의 정제(正齊)함은 일신(一身)의 언행(言行)으로부터 시작(始作)함을 말함이오, 大學書에「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 신(身)이 수(修)한 후(後)에 가(家)가 제(齊)하고 가(家)가 제(齊)한 후(後)에 국(國)이 치(治)한다」하는 말과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국속어(我國俗語)에 「國家用人 先視其家 = 국가(國家)가 사람을 씀에 먼저 그 가(家)를 시(視)하라」하니, 이는 국가(國家)가 인재(人材)를 선택(選擇)함에는 먼저 그 사람의 가정(家庭)이 정제(正齊)되고 정제(正齊)되지 못함을 보라고 함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처자(妻子)가 항상(恒常) 동정식(同鼎食) 공거처(共居處)하면서 그를 정제(正齊)할 수 없는 인재(人材)라면 그 사람이 일국(一國)의 대사(大事)를 맡아서 능(能)히 그 임무(任務)를 감당(勘當)할 수 없을 것이오, 평소(平素)에 언사(言辭)와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다고 하면 그 가정(家庭)은 스스로 정제(正齊)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 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은 사회조직(社會組織)의 단위(單位)가 되는지라, 가도(家道)에 항(恒)이 있음과 같이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도 또한 항(恒)이 있으니, 역(易)에「振恒在上大無功也 = 진항(振恒)으로 상(上)에 있으니 크게 공(功)이 없다」【註十三】하니, 이는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는 반드시 항구(恒久)한 상도(常道)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업(事業)의 실공(實功)이 이루어지고, 만일 경솔부동(輕率浮動)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상도(常度)가 없으면, 민중(民衆)이 그 적종(適從)할 바를 알지 못하여 의혹(疑惑)이 생(生)하고 의혹(疑惑)이 생(生)하면 정령(政令)을 신(信)치 아니하여 사공(事功)이 이루지 못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久於其道 而天下化成 = 성인(聖人)이 그 도(道)에 구(久)하매 천하(天下)가 화(化)하여 성(成)한다」【註十四】하니,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일정(一定)한 상규(常規)가 있으므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점화(漸化)하여 미속(美俗)을 이룸을 말함이니, 누풍(陋風)을 미풍(美風)으로 개이(改移)하고 악속(惡俗)을 미속(美俗)으로 환역(換易)함에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항구(恒久)한 도(道)로써 점화(漸化) 점성(漸成)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國家)의 정책(政策)같은 것도 비록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하고 시의(時宜)에 합(合)하도록 변통(變通)하여야 할 것이나, 그 소위(所謂) 변통(變通)은 항구(恒久)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한 지도원리(指導原理)라든가 백년대계(百年大計)같은 것을 체(體)로 하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정령(政令)이 사변사개(乍變乍改)하여 마침내 무질서(無秩序) 상태(狀態)에 빠지고 국가(國家)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이 지리멸열(支離滅裂)하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역사(歷史)에 징(徵)하건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인성(人性)은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이조(李朝)에 계승(繼承)된지라 【註十五】. 그러므로 삼국(三國)과 고려(高麗)는 인성(人性)과 정령(政令)이 모두 항구성(恒久性)이 있어 견실(堅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이르러 민간(民間)의 속담(俗談)에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고 이조(李朝)에 이르러 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니, 이는 민중(民衆)들이 정령(政令)이 항구(恒久)치 못하여 삼일(三日)만에 또 변개(變改)됨을 풍자(諷刺)한 말이다. 황방촌(黃尨村)은 세종(世宗)때의 명재상(名宰相)이라, 정부내(政府內)에 법령(法令) 변개론(變改論)이 일어나면 대개(大槪)「나는 변통(變通)의 재(才)가 핍(乏)하니 감(敢)히 변개(變改)하기를 의논(議論)할 수 없고 다만 성헌(成憲)을 준수(遵守)할 뿐이라」하여 응(應)치 아니하니, 이는 방촌(尨村)이 보수(保守)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오 당시(當時) 인심(人心)이 경조(輕躁)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분운(紛紜)히 변개(變改)하기를 좋아하는 폐풍(弊風)을 진압(鎭壓)하기 위(爲)함이라, 이러한 명재상(名宰相)이 있는 까닭에 세종왕(世宗王)의 사업(事業)이 더욱 빛난 것이다,

註一. 恒卦彖傳
註二. 同上
註三. 繫辭下傳 第七章
註四. 屯卦彖傳
註五. 大哉以下는 乾卦彖傳이오, 至哉以下는 坤卦彖傳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序卦傳上篇
註八. 屯卦彖傳
註九. 論語子路篇
註十. 論語述而篇
註十一. 家人卦彖傳
註十二. 家人卦大象傳
註十三. 恒卦上六爻小象傳
註十四. 恒卦彖傳
註十五. 아국(我國)의 인성(人性)에 대(對)하여 옛 사가(史家)들은 평(評)하되 삼국시대(三國時代)는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다고 하며, 이조시대(李朝時代)에 대(對)하여는 세종왕(世宗王)은 말하되 「경조(輕躁)」하다고 하니, 혼후(渾厚)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있고 용(用)이 주편(周遍)하여 안계(眼界)가 넓어서 자기(自己)의 사리(私利)보다도 국가통체(國家統體)의 이해(利害)를 더 크게 생각함이라, 그러므로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일반(一般)으로 겸양(謙讓)의 풍(風)이 대행(大行)하고, 관리(官吏)가 자기(自己)보다 유능(有能)한 자(者)에게 관직(官職)을 사양(辭讓)하는 일이 있고, 국가(國家)에 대난(大難)이 있으면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먼저 창검(槍劍)을 짚고 궁시(弓矢)를 메고 선진(先陣)에 나서고 사졸(士卒)이 그 뒤를 따르니, 이는 평소(平素)에 국가(國家)의 후은(厚恩)을 특수(特殊)히 향수(享受)하고 있는 자(者)가 국난(國難)에 솔선출동(率先出動)하는 것이 당연(當然)한 의무(義務)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니 이가 아국사(我國史) 상(上)에 가장 광휘(光輝)있는 시대(時代)를 현출(現出)한 원동력(原動力)이오, 저 유명(有名)한 신라(新羅)의 화랑(花郞)도 또한 이러한 미질(美質)속에서 화생(化生)한 것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귀족계급(貴族階級)이 안일(安逸)을 탐(貪)하여 부패(腐敗)하기 시작(始作)하고, 고려(高麗)에 이르러서는 혼후(渾厚)의 기상(氣象)이 적어지나, 오히려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유풍여속(遺風餘俗)이 있어 그 기질(氣質)이 직실(直實)하니, 체(體)가 직(直)하면 용(用)이 환(圜)하는 것은 환직호근(圜直互根)의 법칙(法則)이라, 체(體)가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용(用)이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 외구(外寇)가 있을 때에는 역시(亦是)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전진(戰陣)의 선봉(先鋒)에 입(立)하여 능(能)히 십여차(十餘次)의 강구(强寇)를 대적(對敵)하고 선조(先祖)의 유업(遺業)을 수호(守護)한 것이다. 고려말엽(高麗末葉)으로부터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에 향교학생(鄕校學生)들이 병역(兵役)을 기피(忌避)하기 위(爲)하여 공자묘(孔子廟)를 지킨다는 구실(口實)로써 병역면제(兵役免除)를 정부(政府)에 요청(要請)하니, 당시(當時)의 정승(政丞) 염제신(廉悌臣)이 이를 절책(切責)하되 국난(國難)이 있을 때에 귀족자제(貴族子弟)가 먼저 출전(出戰)하는 것은 조종조(祖宗朝) 이래(以來)의 양풍(良風)이며 또 여등(汝等)이 공자묘(孔子廟)를 지키지 아니하면 공자위패(孔子位牌)가 어디로 도망(逃亡)간다드냐 하여 모두 군대(軍隊)에 편입(編入)한 일도 있다. 이조(李朝)에 이르러서는 경조(輕躁)의 풍(風)이 그대로 계승(繼承)되니, 경조(輕躁)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치 못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용(用)이 의착(依着)할 근거(根據)가 박약(薄弱)하여 인성(人性)이 요동부유(搖動浮遊)하고 경박조급(輕薄躁急)함이라, 그러므로 소위(所謂) 문화(文化)는 허례허식(虛禮虛飾)과 무문농필(舞文弄筆)에 흐르고, 소위(所謂) 정치(政治)는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삼일공사(三日公事)의 폐(弊)에 빠지고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생(生)하니 유명(有名)한 「이동고(李東皐)」의 임종유차(臨終遺箚)에 「今世之人 或有不事行檢 不務讀書而高談大言 結爲朋友者 以爲高致 遂成虛僞之風 = 금세(今世)의 인(人)이 혹(或) 행검(行檢)을 일삼지 아니하고 독서(讀書)를 힘쓰지 아니하고 높은 말과 큰말을 하여 결(結)하여 붕우(朋友)를 만드는 것을 써 고치(高致)라 함이 있어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성(成)한다」하여, 붕당(朋黨)의 사(私)가 있음을 경계(警戒)하더니, 불과(不過) 수년(數年)에 망국(亡國)의 장본(張本)이 된 붕당(朋黨)의 파쟁(派爭)을 양성(釀成)하고 다시 삼국(三國) 고려(高麗)의 혼후직실(渾厚直實)의 유풍(遺風)을 찾아 볼 수 없이 된 것이다. 또 이 기질(氣質)의 변천(變遷)을 왕위계승(王位繼承) 문제(問題)로써 보건대, 군주(君主)는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할 능력(能力)이 있음을 제일조건(第一條件)으로 하나니, 그런 능력(能力)이 있은 연후(然後)에 군주(君主)를 중심(中心)으로 하여 국내(國內)의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면서 통체(統體)의 통일작용(統一作用)에 귀일(歸一)하는 것이오, 만일 유아(幼兒)가 즉위(卽位)하면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하는 중심작용(中心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서로 분립(分立)하여 투쟁(鬪爭)만 있고 조화(調和)가 없어서 국정(國政)이 혼란(混亂)하는 것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인성(人性)이 혼후(渾厚)하고 이 원리(原理)를 잘 체득(體得)하여 육칠백년간(六七百年間)에 유군(幼君)을 세운 일이 없고, 왕자(王子)가 연유(年幼)하면 제질중(弟姪中)에서 선택(選擇)하여 세우고, 신라(新羅)같은 나라는 삼성(三姓)이 상전(相傳)하여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또 현명(賢明)한 자(者)를 세우고, 오직 고구려(高句麗)의 태조왕(太祖王)과 신라(新羅)의 진흥왕(眞興王)이 유년(幼年)으로 즉위(卽位)한 일이 있으나, 이는 아시(兒時)로부터 기위(奇偉)하여 장자(長者)의 풍(風)이 있다 하니 한 예외(例外)이오. 백제(百濟)에 한 유군(幼君)이 있으나 그는 적신(賊臣)의 옹립(擁立)한 자(者)이니 또한 문제외(問題外)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군주(君主)들은 일시(一時)의 안일(安逸)을 투취(偸取)하여 국가통체(國家統體)를 위(爲)하는 생각보다 자기(自己)의 혈통(血統)이 만대영화(萬代榮華)하기를 원(願)하는 욕심(慾心)이 앞을서서, 연장차현(年長且賢)한 제질(弟姪) 등(等)에게 왕위(王位)를 주지 아니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풍(風)을 생(生)하여, 소성왕(昭聖王)이 유자(幼子) 애장왕(哀莊王)에게 전위(傳位)하더니 마침내 그 숙부(叔父) 헌덕왕(憲德王)에게 죽고, 이로부터 왕위쟁탈(王位爭奪)의 추악(醜惡)한 전쟁(戰爭)이 전개(展開)된 것이다. 고려초기(高麗初期)에는 부자계승(父子繼承)뿐만 아니라 형전제수(兄傳弟受)한 일도 많더니, 중엽이후(中葉以後)에 이 풍(風)이 변(變)하여 유왕(幼王)의 즉위(卽位)하는 일이 생긴바, 그 결과(結果)는 역시(亦是) 길상(吉祥)치 못하여 헌종(獻宗)은 그 숙부(叔父) 숙종(肅宗)에게 축출(逐出)되고, 충정왕(忠定王)은 그 숙부(叔父) 공민왕(恭愍王)에게 죽으니, 연장(年長)한 제(弟)를 멀리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것이 반드시 화기(禍機)를 포장(包藏)하고 있음은 사실(史實)이 소연(昭然)한지라, 이조(李朝)에 이르러 다시 이 전철(前轍)을 밟아서 단종(端宗)이 또한 그 숙부(叔父) 세조(世祖)에게 죽으니, 실(實)로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천진란만(天眞爛漫)한 유왕(幼王)들이 시대풍(時代風)의 화(禍)를 입어 횡액(橫厄)에 걸림을 통한(痛恨)케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社會)는 이조시대(李朝時代)의 경조(輕躁)의 풍(風)을 그대로 상속(相續)하고 있는지라, 이 풍(風)을 변통(變通)치 아니하고는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등(等) 천시만설(千施萬設)이 모두 대과(大過) 동요(棟撓)의 상(象)이 되어 부박(浮薄)․퇴폐(頹廢)하여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일공사(三日公事)를 재판(再版)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삼정(三情)과 사정(四情) (역학원론 한장경 저)-正大本能



삼정(三情)과 사정(四情)
‣정대본능(正大本能)

천지만물(天地萬物)에는 공통(共通)으로 감응(感應) 췌취(萃聚) 항구(恒久)의 삼정(三情)이 있으나 오직 천지(天地)에는 삼정(三情)의 이외(以外)에 또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다.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은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천지(天地)의 이외(以外)에 따로 만물(萬物)이 있는 것이 아니오, 일월대지(日月大地)도 또한 만물(萬物)의 하나로서 만물(萬物)이 없으면 천지(天地)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의 상이(相異)한 바는, 천지(天地)라 함은 태일체(太一體)인 통체(統體)를 말함이오, 만물(萬物)이라 함은 각(各) 부분(部分)인 개체(個體)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포함(包含)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비록 태일체(太一體)의 일원(一員)이 되고 있으되 모두 독수(獨殊)한 개체(個體)를 가지고 통체(統體)의 일부분(一部分)을 이루고 있으니, 이 통체(統體)와 개체(個體)와의 상이(相異)가 곧 천지(天地)와 만물(萬物)과의 상이(相異)한 바이다.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조직(組織)은 천수만분(千殊萬分)한 물(物)을 한 계통(系統)에 연계(連繫)하여 스스로 혼연범위(渾然範圍)하여 편(偏)치 아니하니 이 작용(作用)을 정(正)이라 하고,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운행(運行)은 능(能)히 만물(萬物)에 관통(貫通)하고, 또 능(能)히 만물(萬物)을 통어(統御)하여 어느 일물(一物)의 유기(遺棄)함도 없이 스스로 통일운동(統一運動)을 행(行)하여 국(局)치 아니하니 이 작용(作用)을 대(大)라 하니, 천지(天地)의 작용(作用)은 스스로 정(正)하고 스스로 대(大)하여 이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한 본능(本能)으로 되어 있으므로, 역(易)에는 「正大而天地之情可見矣 = 정(正)하고 대(大)함에 천지(天地)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一】한 것이다.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는 무위(無爲)히 또 자연(自然)히 발로(發露)하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나, 만물(萬物)의 개체(個體)는 그 조직(組織)이 편(偏)하여 정(正)치 못하고 그 운행(運行)이 국(局)하여 대(大)치 못하니, 뇌풍(雷風) 수화(水火) 산택(山澤) 내지(乃至) 동물(動物) 식물(植物) 같은 것이 모두 일편(一便)의 임무(任務)밖에는 행(行)치 못함은 물론(勿論)이오, 일월대지(日月大地)와 같은 지거지대(至巨至大)한 물(物)도 또한 모두 개체(個體)로 되어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인 편국(偏局)한 기능(機能)밖에는 가지지 못하니, 이 까닭에 정대(正大)의 정(情)은 오직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에만 있고 만물(萬物)의 개체(個體)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 인생(人生)도 한 개체(個體)로 되어 있는지라, 또한 편국(偏局)하고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으니, 이가 사람이 스스로 인간(人間)의 불완전(不完全)함을 탄식(歎息)하는 소이(所以)이다. 다만 사람은 그 신체(身體)의 조직(組織)이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를 통관(通貫)하고 그 정신(精神)의 운행(運行)이 능(能)히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받을 수 있는 소질(素質)을 가지고 있으니, 이가 사람이 동물(動物)이나 식물(植物) 등(等)과 상이(相異)한 바이다.

(역사람과 동식(動植)과의 비교(比較)(역학원론 한장경 저)

사람과 동식(動植)과의 비교(比較)

이제 동식물(動植物)과 사람을 비교(比較)하여 보건대 만물(萬物)은 그 조직(組織)에 따라서 천(天)에 본(本)한 자(者)와 지(地)에 본(本)한 자(者)가 있으니,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므로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기(氣)가 강건(强健)하여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므로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정(精)이 후중(厚重)하여 하(下)를 친(親)하나니, 동물(動物)은 상(上)을 친(親)하는 자(者)이오, 식물(植物)은 하(下)를 친(親)하는 자(者)이다. 먼저 식물(植物)로써 보면 식물(植物)은 지중(地中)에 착근(着根)하여 지(地)에 본(本)함으로 스스로 유동(流動)치 못하고 그 섭취(攝取)하는 영양분(營養分)은 근착지(根着地)의 지미(地味)에 국한(局限)하고 기(氣)를 받음이 극(極)히 적으니 정신(精神)은 기(氣)의 작용(作用)이라, 식물(植物)은 하(下)를 친(親)하고 기(氣)가 적음으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없고 오직 약간(若干)의 감각(感覺)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동물(動物)은 대개(大槪) 배부(背部)는 천(天)을 향(向)하고 복부(腹部)는 지(地)를 향(向)하여 체(體)가 횡재(橫在)하여 평면(平面)이 되고 있으므로 주(主)로 지(地)에 본(本)하여, 비록 그 체(體)가 자유(自由)로 유동(流動)하고 있으되 그 섭취(攝取)하는 바의 식물(食物)은 대개(大槪) 일정(一定)한 범위(範圍)에 국한(局限)하여 각미(各味)를 겸식(兼食)치 못하고 전(專)혀 편식(偏食)하고 있으니, 동물(動物)에 육서(陸棲) 수서(水棲) 식초류(食草類) 식육류(食肉類) 등(等)이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오, 또 비록 호흡(呼吸)하고 있으되 기(氣)를 받음이 광대(廣大)치 못하고 정신작용(精神作用)이 극(極)히 편국(偏局)하여 과거(過去)에 대(對)한 기억(記憶)과 미래(未來)에 대(對)한 추상(推想)이 거의 없고 오직 현실생활(現實生活)에 지배(支配)되고 있으니, 사람도 음식(飮食)을 편식(偏食)하는 자(者)가 대개(大槪) 편성(偏性)이 되고 기(氣)의 부족(不足)한 자(者)가 대개(大槪) 정신(精神)이 건전(健全)치 못하여 그 생활(生活)과 일상(日常)의 활동(活動)이 주(主)로 현실생활(現實生活)에 편국(偏局)하고 있음은 이 까닭이다.

사람은 비록 동물(動物)의 일류(一類)에 소속(所屬)하여 그 삼정(三情)의 발로(發露)는 동물(動物)과 하등(何等)의 차이(差異)가 없으되, 오직 그 조직형태(組織形態)가 두부(頭部)는 천(天)을 향(向)하고 양족(兩足)은 지(地)를 밟아서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각(三角)의 자태(姿態)를 이루고 이 자태(姿態)는 직립체(直立體)로 되어 주(主)로 천(天)에 본(本)하여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를 통관(通貫)하고 있다.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動者體橫 植者體縱 人宜橫而反縱也 飛者有翅 走者有趾 人之兩手翅也 兩足趾也 飛者食木 走者食草 人皆兼之而又食飛走也 故最貴乎萬物也 = 동물(動物)은 체(體)가 횡(橫)하고 식물(植物)은 체(體)가 종(縱)하니 사람은 마땅히 횡(橫)할 것이나 도리어 종(縱)하다 비조(飛鳥)의 유(類)는 시(翅)가 있고 주수(走獸)의 유(類)는 지(趾)가 있는데 사람의 양수(兩手)는 시(翅)오, 양족(兩足)은 지(趾)이다. 비류(飛類)는 목(木)을 식(食)하고 주류(走類)는 초(草)를 식(食)하는데 사람은 양자(兩者)를 겸(兼)하고 또 비주(飛走)를 식(食)하니 이런 고(故)로 사람은 가장 만물(萬物)보다 귀(貴)하다」【註二】하니, 이는 사람은 동물(動物)이면서 또한 동물(動物)의 유(類)를 초월(超越)하여 체(體)가 직립(直立)하고, 그 동작(動作)은 조수(鳥獸)의 시지(翅趾)를 겸유(兼有)하여 양족(兩足)은 신체(身體)를 지탱(支撑)하고 양수(兩手)는 기구(器具)를 사용(使用)하며, 식물(食物)은 초목조수(草木鳥獸) 등(等)의 백미(百味)를 겸식(兼食)함으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능(能)히 심원(深遠)을 탐색(探索)하여 자연계(自然界)의 비밀(秘密)을 개척(開拓)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능(能)히 과거(過去)를 기억(記憶)하고 미래(未來)를 추상(推想)하며, 더욱이 자기(自己)의 정신력(精神力) 만으로는 오히려 부족(不足)하다고 생각하여 타인(他人)의 지식(知識)․기능(技能) 등(等)을 학내(學來)하여 자기(自己)의 정신력(精神力)을 보익배양(補益培養)하니, 이가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이 광원고대(廣遠高大)하여 멀리 동물계(動物界)를 초출(超出)한 소이(所以)이다. 소강절(邵康節)은 이를 설명(說明)하되 「能用天下之目 爲己之目 其目無所不觀矣 用天下之耳 爲己之耳 其耳無所不聽矣 用天下之口 爲己之口 其口無所不言矣 用天下之心 爲己之心 其心無所不謀矣 夫天下之觀 其于見也 不亦廣乎 天下之聽 其于聞也 不亦遠乎 天下之言 其于論也 不亦高乎 天下之謀 其于樂也 不亦大乎」= 「능(能)히 천하(天下)의 목(目)을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목(目)을 삼으니 그 목(目)이 관(觀)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이(耳)를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이(耳)를 삼으니 그 이(耳)가 청(聽)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구(口)를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구(口)를 삼으니, 그 구(口)가 언(言)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심(心)을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심(心)을 삼으니 그 심(心)이 모(謀)치 못하는 바가 없다. 천하(天下)의 관(觀)함이 그 견(見)함에 또한 광(廣)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청(聽)함이 그 문(聞)함에 또한 원(遠)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언(言)함이 그 논(論)함에 또한 고(高)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모(謀)함이 그 낙(樂)함에 또한 대(大)치 아니하랴」 【註三】하여, 성인(聖人)은 천하(天下)의 이(耳) 목(目) 구(口) 심(心)으로써 자기(自己)의 이(耳) 목(目) 구(口) 심(心)을 삼는 까닭에, 그 보는 것이 지광(至廣)하고 그 듣는 것이 지원(至遠)하고 그 의논(議論)하는 것이 지고(至高)하고 그 즐겨하는 것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영원(永遠)히 생존(生存)할 계획(計劃)을 수립(樹立)하고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을 정(定)하여 공동생활(共同生活)의 질서(秩序)를 보전(保全)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사람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것이오, 이 정신력(精神力)의 영이(靈異)함이 곧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 받을 수 있는 소질(素質)이 되고 이러한 소질(素質)을 이성(理性)이라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한 면(面)으로는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는 감정(感情)을 가지고, 한 면(面)으로는 사람 특유(特有)의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으니, 감정(感情)은 체(體)오, 이성(理性)은 용(用)이다. 세간(世間)에서 흔히 사람을 감정적(感情的)동물(動物)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체(體)의 일면(一面)을 말하는 것이니 실(實)은 사람은 여러 동물중(動物中)에서 유일(唯一)한 이성적(理性的) 동물(動物)이다. 그러므로 삼정(三情)으로써 보더라도 색욕(色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음양관계(陰陽關係)에 대(對)하여 혈연적(血緣的) 사회적(社會的)으로 엄격(嚴格)한 규정(規定)이 있으며 식욕(食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재화(財貨)와 음식(飮食)에 대(對)하여 예의(禮儀)와 염치(廉恥)가 있어 취(取)할 바와 취(取)치 못할 바를 알며, 자존욕(自存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타인(他人)을 위(爲)하고 사회(社會)를 위(爲)하여 자신(自身)의 생명(生命)을 희생(犧牲)하는 일이 있으니, 이것이 모두 이성(理性)으로부터 출래(出來)한 사람의 특유(特有)한 행위(行爲)이다. 이와 같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人生)은 반드시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 받아서 모든 행위(行爲)로 하여금 정(正)하여 편(偏)치 아니하고, 대(大)하여 국(局)치 아니한 연후(然後)에 삼정(三情)의 발로(發露)가 모두 절도(節度)에 적중(適中)하여 조화(調和)함을 얻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할 수 있는 것이다.

삼정(三情)과 생활(生活)과의 관계(關係) (역학원론 한장경 저)

‣삼정(三情)과 생활(生活)과의 관계(關係)

사람의 수양(修養)과 사업(事業)에도 삼정(三情)의 작용(作用)이 있으니 역(易)에 「學以聚之 問以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 학(學)하여 써 취(聚)하고, 문(問)하여 써 변(辨)하고, 관(寬)하여 써 거(居)하고,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註四】하니, 학(學)하여 써 취(聚)한다 함은 학문(學問)을 배워서 지식(知識)을 적누(積累)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문(問)하여 써 변(辨)한다 함은 붕우(朋友)의 지(志)가 상통(相通)하여 난의(難疑)를 문답(問答)하여 서로 자익(滋益)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관(寬)하여 써 거(居)한다 함은 심량(心量)이 관홍(寬弘)하고 소수(所守)가 확연(確然)하여 오래 하되 변(變)치 아니하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오,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함은 심덕(心德)이 혼전(渾全)하여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함에 돈후(敦厚)하고 자애(慈愛)하고 그 행(行)하는 바가 공정(公正)하고 사사(私邪)가 없는 정대작용(正大作用)이다.


논어(論語)의 첫 머리에 공자(孔子)의 말에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학(學)하고 시(時)로 습(習)하면 또한 열(悅)치 아니하랴」【註五 以下의 二句도 同註內에 있다】함은 역(易)의 학취(學聚)이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붕(朋)이 있어 원방(遠方)으로 부터 내(來)하면 또한 낙(樂)치 아니하랴」함은 역(易)의 문변(問辨)이오,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 인(人)이 지(知)치 아니 하여도 온(慍)치 아니 하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랴」함은, 역(易)의 관거(寬居)이니 이 삼작용(三作用)이 구전(具全)하면 또한 능(能)히 인행(仁行)하여 그 실천(實踐)이 정대작용(正大作用)에 합(合)하는 것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 있어서는 역(易)에 「애(愛) 부(富) 위(威)」【註六】의 삼작용(三作用)을 말하니, 애(愛)는 가인(家人)의 지(志)가 상애(相愛)하여 화합(和合)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富)는 재화(財貨)를 생산(生産)하여 가산(家産)을 부유(富裕)케 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위(威)는 가정(家庭)의 질서(秩序)를 정제(正齊)하고 일정(一定)한 규모(規模)를 세우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다. 애(愛)가 없으면 가인(家人)의 마음이 서로 배역(背逆)하여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각기자기(各其自己)의 맡은 바의 임무(任務)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오, 부(富)가 없으면 생활(生活)이 안정(安定)치 못하는 것이오, 위(威)가 없으면 부자(婦子) 등(等)이 희희방종(嘻嘻放縱)하여 윤서(倫序)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절(家節)이 패괴(敗壞)되는 것이니, 애부위(愛富威)의 삼정(三情)이 모두 득의(得宜)한 연후(然後)에 가정(家庭)에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인(世人)은 흔히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가도(家道)는 애(愛)로서 체(體)를 삼고 위(威)로써 용(用)을 삼는지라, 그러므로 애(愛)라 함은 애정(愛情)에 빠져서 환압(歡狎)에 흐름을 말함이 아니오, 지성(至誠)으로써 상대(相對)하여 서로 속이지 아니하고 가인(家人)으로 하여금, 감격(感激)케하면 스스로 애(愛)가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친목화락(親睦和樂)함을 말함이니, 역(易)에 「王假(格) 有家 交相愛也= 왕(王)이 가(假)하여 가(家)를 유(有)함은 교상애(交相愛)함이라」【註七】함은, 그 가정(家庭)을 감화(感化)케 함으로써 서로 친애(親愛)함을 말함이오 위(威)라 함은 엄려(嚴厲)하고 노책(怒責)함을 말함이 아니오, 먼저 자신(自身)을 반성(反省)하여 스스로 엄칙(嚴飭)한 연후(然後)에 가인(家人)을 지도(指導)하면 스스로 위엄(威嚴)이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열복순종(悅服順從)함을 말함이니, 역(易)에「威如之吉 反身之謂也 = 위여(威如)의 길(吉)함은 신(身)에 반(反)함을 이름이라」【註八】함은, 위(威)함이 길(吉)하다는 것은 가인(家人)을 바로잡기 전(前)에 먼저 자신(自身)을 책(責)하면 위엄(威嚴)이 스스로 입(立)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치 못하는 것이 아니며 또 역(易)에 「立人之道曰 仁與義 = 인(人)의 도(道)를 입(立)하여 가로되 인(仁)과 의(義)라」【註九】하니, 인(仁)은 체(體)오 의(義)는 용(用)으로서 애(愛)는 인(仁)의 작용(作用)이오, 위(威)는 의(義)의 작용(作用)이니, 가정(家庭)의 애위(愛威)는 곧 인도(人道)의 인의(仁義)가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의 삼정작용(三情作用) (역학원론 한장경 저)

정치(政治)의 삼정작용(三情作用)
국가(國家)의 정치(政治)에는 역(易)에 「理財 正辭 禁民爲非曰義 = 재(財)를 이(理)하고 사(辭)를 정(正)하고 민(民)의 비행(非行)을 금(禁)함을 가로되 의(義)라 한다」【註十】하니, 이재(理財)라 함은 재(財)를 경리(經理)하여 경제생활(經濟生活)을 풍족(豊足)케 하여 써 인심(人心)을 취합(聚合)함이니 곧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정사(正辭)라 함은 위정자(爲政者)가 언사(言辭)를 바르게 하여 허위(虛僞)와 기만(欺瞞)이 없고, 인심(人心)을 감화(感化)함이니 곧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금민위비(禁民爲非)라 함은 무비(武備)를 수치(修治)하여 폭민(暴民)의 비행(非行)을 금(禁)하여 사회(社會)의 질서(秩序)를 유지(維持)함이니 곧 항구작용(恒久作用)이라, 의(義)로써 이 삼정(三政)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한 연후(然後)에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정대(正大)하게 행(行)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 자공(子貢)이 정(政)을 문(問)한대 자(子)가라사대 식(食)을 족(足)하게 ,하고 병(兵)을 족(足)하게 하고, 민(民)이 신(信)하게 함이니라. 자공(子貢)이 가로되 반드시 부득이(不得已)하여 거(去)하려면 이 삼자(三者)에 하(何)를 먼저하릿고, 가라사대 병(兵)을 거(去)할지니라, 자공(子貢)이 가로되 반드시 부득이(不得已)하여 거(去)하려면 이 이자(二者)에서 하(何)를 먼저 하릿고 가라사대 식(食)을 거(去)할지니라 자고(自古)로 다 사(死)는 있으나 민(民)은 신(信)이 없으면 입(立)치 못하느니라」【註十一】하니, 족식(足食)은 이재(理財)이니 곧 췌취(萃聚)이오 족병(足兵)은 금민위비(禁民爲非)이니 곧 항구(恒久)이오 민신(民信)은 정사(正辭)이니 곧 감응(感應)이라, 이 문답(問答)의 요지(要旨)는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있어서 부득이(不得已)한 경우(境遇) 즉(卽) 국보(國步)가 간난(艱難)한 때에 이 삼정중(三政中)의 어느 하나를 폐(廢)하려면 마땅히 국방정책(國防政策)을 폐(廢)할지오, 또 부득이(不得已)한 경우(境遇)에 이정중(二政中)의 어느 하나를 폐(廢)하려면 마땅히 식량정책(食糧政策)을 폐(廢)할지오, 오직 어떠한 경우(境遇)라도 즉(卽) 국방(國防)이 허소(虛疎)하고 식량(食糧)이 부족(不足)하여 사(死)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信)만은 폐(廢)할 수가 없으니, 신(信)이 없으면 민(民)이 존립(存立)할 수가 없다 함이니, 이는 삼정중(三政中)에 어느것이 중요(重要)치 아니 함이 없으되 특(特)히 신(信)이 가장 중요(重要)하여, 차라리 병비(兵備)를 버릴지언정 또 차라리 식량(食糧)을 버릴지언정 국민(國民)에게 신(信)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비(譬)하건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감응(感應)에 의(依)하여 기(氣)가 감동(感動)한 연후(然後)에 양성(兩性)이 상교(相交)하여 정(精)이 췌취(萃聚)하고, 정(精)이 췌취(萃聚)한 연후(然後)에 항구(恒久)한 형체(形體)가 잉태(孕胎)되는 것이라. 그 화생순서(化生順序)는 감응(感應)이 최선(最先)하고 췌취(萃聚)가 기차(其次)하고 항구(恒久)가 또 기차(其次)하여 감응작용(感應作用)만 있으면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할 수가 있으나 만일 처음부터 감응작용(感應作用)이 없으면 양성(兩性)이 상교(相交)치 못하여 생식(生殖)의 공(功)이 영절(永絶)하는 것이오. 또 정(精)이 췌취(萃聚)하면 잉태(孕胎)할 수가 있으나 만일 정(精)이 췌취(萃聚)치 못하면 잉태(孕胎)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병(兵) 식(食) 신(信)의 삼정중(三政中)에 어느 하나를 흠결(欠缺)하여도 그 사회(社會)는 안전(安全)치 못한 것이나, 그 중(中)에서도 신(信)(감응(感應))이 최선(最先)하고 식(食)(췌취(萃聚))이 기차(其次)하고 병(兵)(항구(恒久))이 또 기차(其次)하는 것이니 정령(政令)이 신(信)이 있으면 비록 일시국세(一時國勢)가 위난(危難)하여 산업(産業)과 국방(國防)이 충실(充實)치 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國民)이 정령(政令)을 신뢰(信賴)하고 있으므로, 명령일하(命令一下)에 그 노고(勞苦)를 잊고 생산업(生産業)의 노역(勞役)에 열종(悅從)하며, 그 사(死)를 잊고 험난(險難)을 범(犯)하여 적(敵)을 방비(防備)할 수가 있으니, 역(易)에 「悅而先民 民忘其勞 悅而犯難 民忘其死 悅之大 民勸矣哉 = 열(悅)하여 민(民)에 선(先)하면 민(民)이 그 노(勞)를 망(忘)하고, 열(悅)하여 난(難)을 범(犯)하면 민(民)이 그 사(死)를 망(忘)하나니, 열(悅)의 대(大)함이여 민(民)이 권(勸)하도다」【註十二】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만일 민(民)에게 신(信)을 잃으면 민심(民心)이 감응(感應)치 아니하여 정령(政令)을 열종(悅從)치 아니하고, 민심(民心)이 열종(悅從)치 아니하면 국가(國家)에 췌취(萃聚)치 아니하여 통체(統體)의 운행(運行)이 체색(滯塞)하고 연(延)하여 국가(國家)의 항구(恒久)한 안전(安全)을 기(期)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첫머리에 「道者 令民與上同意 可與之死 可與之生而不畏危也 = 도(道)라 함은 민(民)으로 하여금 상(上)으로 더불어 의(意)를 동(同)히 하여 가(可)히 더불어 사(死)하고 가(可)히 더불어 생(生)하여 위(危)를 외(畏)치 아니함이라」【註十三】하니, 이는 국민상하(國民上下)가 일심동의(一心同意)하여 사생(死生)을 함께하고 위험(危險)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境地)에 이르는 것이 곧 국방(國防)의 대도(大道)임을 말함이니, 상하(上下)가 감응(感應)하여 서로 신뢰(信賴)하고 사생(死生)을 함께 하는 경지(境地)에 이른다고 하면, 병식(兵食)의 해결책(解決策)은 또한 스스로 그 중(中)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는 삼정(三政)이 구전(具全)한 때에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나, 특(特)히 정사(正辭) 즉(卽) 정직(正直)하고 허위(虛僞)없는 정치(政治)가 가장 주요(主要)한 것이오, 정직(正直)하고 허위(虛僞)없는 정치(政治)가 곧 이간정치(易簡政治)이다.
註一. 大壯卦彖傳
註二.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三. 皇極經世觀物內篇之十二
註四. 乾卦文言
註五. 論語學而篇
註六. 家人卦全體의 大意
註七. 家人卦九五爻小象傳
註八. 家人卦上九爻小象傳
註九. 說卦傳 第二章
註十. 繫辭下傳 第一章
註十一. 論語顔淵篇
註十二. 兌卦彖傳 

상반(相反)의 속에 상제(相濟)가 있다-유형(流形)과 시용(時用)

유형(流形)과 시용(時用)
삼시용(三時用)과 사시의(四時義)
‣상반(相反)의 속에 상제(相濟)가 있다

만물(萬物)이 운행(運行)하여 유동형현(流動形現)함에는 공간적(空間的)으로는 항상(恒常) 외물(外物)과 접촉(接觸)하고 영양(營養)을 섭취(攝取)하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항상(恒常) 현상(現狀)을 타개(打開)하고 미래(未來)의 경지(境地)로 향진(向進)하여 써 소(小)로부터 대(大)에 나아가고 유(幼)로부터 장(長)에 이르는 것이므로, 그 유형과정(流形過程)에는 능동(能動)과 수동(受動) 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안정(安貞)과 발용(發用) 등(等) 모든 대대관계(對待關係)가 생(生)하며, 또 이러한 대대관계(對待關係)가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본형(本形)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본형(本形)의 구성(構成)에는 또한 여러 대대(對待)가 포함(包含)되어 그 상반(相反)하는 현상(現象)이 생(生)하나니, 역(易)에 「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 = 이(離)라 함은 명(明)함이니 만물(萬物)이 모두 상견(相見)함이라」【註一】한바, 이(離)는 정하(正夏)의 괘(卦)이라, 정하(正夏)에 일광(日光)이 명조(明照)하고 하지(夏至)에 음양(陰陽)이 상우(相遇)하여 만물(萬物)의 대대(對待)하는 형상(形象)이 숨김없이 모두 현출(現出)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만물(萬物)의 유형과정(流形過程)에 상괴상위(相乖相違)․ 불교불통(不交不通)․ 난진난퇴(難進難退) 등(等) 상반작용(相反作用)이 있는 때에 자체내(自體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의 힘에 의(依)하여 그를 변통(變通)하여 상동(相同) 상화(相和) 상합(相合)케 하는 추기(樞機)가 있으므로, 상반(相反)한 체(體)의 속에는 스스로 그것을 제(濟)하는 용(用)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시용(時用)」이라 한다.

규이(睽異)의 시용(時用)

규이(睽異)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대응(對應)하여, 차(此)가 피(彼)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차(此)의 역(力)이 대(大)하고 피(彼)의 역(力)이 소(小)하며, 또 피(彼)가 반작용(反作用)을 일으켜 차(此)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피(彼)의 역(力)이 대(大)하고, 차(此)의 역(力)이 소(小)하여, 한번 대(大)하고 한번 소(小)한 형태(形態)는 서로 차등(差等)이 있어 규이(睽異)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상반(相反)하는 양작용(兩作用)은 양자(兩者)가 호대호소(互大互小)하여 서로 균등(均等)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 균등작용(均等作用)이 곧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地睽而其事同也 男女睽而其志通也 萬物睽而其事類也 睽之時用 大矣哉 = 천지(天地)가 규(睽)하나 그 사(事)가 동(同)하고 남녀(男女)가 규(睽)하나 그 지(志)가 통(通)하고 만물(萬物)이 규(睽)하나 그 사(事)가 유(類)하니 규(睽)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二】한바, 천지만물(天地萬物)은 그 조직(組織)이 상괴상이(相乖相異)하되 그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상괴(相乖) 상이(相異)한 체(體)가 도리어 상동상류(相同相類)하는 용(用)으로 화(化)하고, 남녀(男女)의 신체(身體)는 그 구조(構造)가 상위(相違)한 까닭에 음양상배(陰陽相配)하는 용(用)이 생(生)하는 것 등(等)이 곧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또 역(易)에는 「同而異 = 동(同)하되 이(異)한다」【註三】한바, 이는 용(用)을 동일(同一)하게 함에는 상이(相異)한 체(體)로써 한다 함이니, 예(例)컨대 옥(玉)을 연마(鍊磨)함에는 동일(同一)한 옥(玉)으로는 연마(鍊磨)가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 반드시 타산(他山)의 석(石)을 취(取)하여 연마(鍊磨)하여야 하며 함미(鹹味)를 조리(調理)함에는 동일(同一)한 함미(鹹味)로서는 더욱 함미(鹹味)를 증강(增强)함으로 반드시 감담(甘淡) 미(味)를 취(取)하여 조리(調理)하여야 함과 같음이니, 이가 또한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작용(作用)은 규이(睽異)하여 서로 차등(差等)하면서 또한 상동(相同)하여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의 형태(形態)는 모두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함험(陷險)의 시용(時用)

함험(陷險)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로 써 보면 개체(個體)는 각기(各其) 특수조직(特殊組織)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항존(恒存)을 위(爲)하여 자수(自守)함이 익고(益固)하고 타력(他力)의 내침(來侵)을 배척(排斥)하여 서로 대적(對敵)하는 투쟁형태(鬪爭形態)는 함험(陷險)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개체(個體)는 통체구성(統體構成)의 요소(要素)가 되어 통체적(統體的)으로 운행(運行)하여 서로 조화(調和)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조화작용(調和作用)이 곧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險不可升也 地險山川丘陵也 王公設險 以守其國 險之時用大矣哉 = 천험(天險)은 가(可)히 승(升)치 못하고 지험(地險)은 산천구능(山川丘陵)이라, 왕공(王公)이 험(險)을 설(設)하여 써 그 국(國)을 수(守)하니 험(險)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四】한바, 천험(天險)은 가(可)히 상승(上升)치 못하는지라 산악(山岳)의 고준(高峻)과 하천(河川)의 심함(深陷)은 지(地)의 지험(至險)으로서 그 개체(個體)로 볼 때에는 천험(天險)과 같이 행로(行路)가 간난(艱難)하고 교통(交通)이 장해(障害)되고 있으나, 그것을 국가방수(國家防守)의 설비(設備)로 전용(轉用)하는 때는 적(敵)이 감(敢)히 상승(上升)치 못하고 감(敢)히 돌파(突破)치 못하여 도리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要塞地)가 되어 국가수호(國家守護)의 이(利)로 화(化)하나니, 이가 곧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각개체간(各個體間)의 투쟁(鬪爭)을 제(濟)하여 통체(統體)의 조화(調和)로 전화(轉化)시키는 작용(作用)으로서 「常德行習敎事 = 덕행(德行)을 상(常)히 하고 교사(敎事)를 習한다」【註五】함을 말한바, 상(常)이라 함은 상도(常度)이오 습(習)이라 함은 습숙(習熟)이라,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민중(民衆)의 각개체(各個體)는 모두 분산(分散)하여 자체(自體)의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따라서 행동(行動)함으로 스스로 투쟁(鬪爭)이 되나니, 역(易)에 「飮食必有訟 = 음식(飮食)에 반드시 송(訟)이 있다」【註六】함은 이를 말함이다. 이러한 개체분산(個體分散)이 있는 때에 다만 정령(政令)만으로서는 조화(調和)한 통체(統體)를 만들 수가 없으니, 만일 명령(命令)을 발포(發布)하고 엄형(嚴刑)으로써 구사(驅使)하면 외형(外形)으로는 비록 순종(順從)하는 듯 하나 내심(內心)은 더욱 이산(離散)하여 단합(團合)한 통체(統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도자(指導者)의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어 변덕(變德)함이 없고 부단(不斷)히 몸으로써 민중(民衆)을 교화(敎化)하면, 민중(民衆)은 일상(日常)의 청문(聽聞)에 습숙(習熟)하여 스스로 화성(化成)하고 열복(悅服)하는 것이니, 이가 곧 개체(個體)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투쟁(鬪爭)을 전화(轉化)하여 조화(調和)를 만드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작용(作用)은 개체적(個體的)으로 호상분산(互相分散)하여 투쟁(鬪爭)의 현상(現象)을 나타내고 있으되 그것을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는 때는 서로 조화(調和)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형태(形態)는 모두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건난(蹇難)의 시용(時用)

건난(蹇難)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안정(安貞)은 지정(止靜)하여 수렴(收斂)하려하고 발용(發用)은 유동(流動)하여 출현(出顯)하려하여 서로 향배추견(向背推牽)하는 형태(形態)는 건난(蹇難)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물(物)이 발용(發用)하여 유행(流行)함에는 먼저 그 본체(本體)를 안정(安定)하고 자체(自體)를 반성(反省)하여 실력(實力)을 수양(修養)한 연후(然後)에 출발(出發)을 재시(再始)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반수작용(反修作用)이 곧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蹇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知矣哉 蹇之時用 大矣哉 = 건(蹇)은 난(難)함이니 험(險)이 전(前)에 재(在)함이라 험(險)을 견(見)하고 능(能)히 지(止)하니 지(知)하다 건(蹇)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七】하고 또 「君子以反身修德 = 군자(君子)가 써 하여 신(身)에 반(反)하여 덕(德)을 수(修)한다」【註八】한바, 지(止)라 함은 지식(止息)함이 아니오 곧 성종성시(成終成始)하는 뜻이라, 일시(一時) 전진(前進)을 정지(停止)하고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하여 사세(事勢)의 추이(推移)를 정관(靜觀)함이오, 지(知)라 함은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利害)를 분석(分析) 비판(批判)하여 망진조동(妄進躁動)치 아니하고 시기(時機)의 도래(到來)를 대(待)함이라, 전로(前路)에 건난(蹇難)함이 있음을 보고 가(可)히 전왕(前往)할 수 없는 때는 지정(止靜)하여 반신자수(反身自修)하여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재출발(再出發)을 도모(圖謀)함이 곧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작용(作用)은 안정(安定)의 속에 유동(流動)이 있고, 유동(流動)의 속에 안정(安定)이 있어, 유동(流動)하려하면 반드시 먼저 체(體)가 안정(安定)하여야 하고 안정(安定)하려하면 반드시 그 작용(作用)이 유동(流動)하여야 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형태(形態)는 모두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시용(時用)과 시의(時義) (역학원론 한장경 저)

‣시용(時用)과 시의(時義)


삼시용(三時用)은 정(精)과 기(氣)의 삼극(三極)의 도(道)에 의(依)하여 생(生)한 것이므로, 비록 그 형태(形態)는 상이(相異)하나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것이 아니오, 서로 착종(錯綜)하여 있으니, 사물(事物)이 규이(睽異)한 때에 또한 함험(陷險)과 건난(蹇難)이 있고, 함험(陷險)한 때에 또한 규이(睽異)와 건난(蹇難)이 있고, 건난(蹇難)한 때에 또한 규이(睽異)와 함험(陷險)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리 혼란(混亂)한 세상(世上)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그 혼란(混亂)을 제(濟)하여 변통(變通)하는 시용(時用)이 포장(包藏)되어 있는 것이니, 고래(古來)로 소위(所謂) 제세(濟世)의 재(才)라 함은 이 포장(包藏)되어 있는 시용(時用)을 탐색(探索)하여 그를 실천(實踐)한 인물(人物)을 말함이다.

그런데 천지(天地)의 조직(組織)은 대대(對待)로 되어 있는지라, 어떠한 시대(時代)가 있으면 그 속에는 그 시대(時代)를 재제(裁制)할 인재(人材)가 생(生)한다고 하나니, 고어(古語)에 「不借人於他代 = 사람을 타대(他代)에 빌지 아니한다」한바, 이는 인재(人材)를 전대(前代)에서나 후대(後代)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그 시대(時代)의 속에 있는 인재(人材)로서 그 시대(時代)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할 수 있음을 말함이오, 아국속어(我國俗語)에 「난리(亂離)가 나면 사람이 난다」함은, 과거(過去) 수천년간(數千年間)의 경험(經驗)으로서 국가(國家)에 대란(大亂)이 있을 때마다 대인재(大人材)가 나타남을 말하니, 난세(亂世)의 인재(人材)도 또한 시용(時用)의 하나이다.

시용(時用)을 찾아서 규이(睽異)․함험(陷險)․건난(蹇難) 등(等)을 변통(變通)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하는 작용(作用)을 「의(義)」라 하나니 역(易)에는 사시(四時)의 변화(變化)를 상(象)하는 예(豫)․구(姤)․둔(遯)․여(旅)의 사괘(四卦)에 「時義大矣哉 = 시(時)의 의(義)가 대(大)하다」【註九】한바, 의(義)는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뜻이다.

예(豫)는 뇌(雷)가 비로소 분진(奮震)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화예(和豫)함이니, 이는 춘(春)의 대시(大始)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비로소 발동(發動)하여 화예(和豫)치 아니할 수 없으나, 화예(和豫)가 극(極)하면 태타(怠惰)가 생(生)함으로 또한 화예(和豫)할 수도 없으니, 이 가예(可豫), 불가예(不可豫)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험난(險難)의 세(世)로부터 비로소 해방(解放)되어 인심(人心)이 모두 화예(和豫)하여 수고족무(手鼓足舞)하고 있으나, 그 화예(和豫)의 속에는 스스로 일태방종(逸怠放縱)의 풍(風)이 양성(釀成)되는 것이니, 이를 경계(警戒)하기 위(爲)하여 엄려(嚴厲)한 정형(政刑)을 행(行)치 아니할 수 없으나, 또한 해방(解放)초기(初期)에 엄려(嚴厲)한 정형(政刑)을 써서 인심(人心)을 위축(萎縮)시키고 음울(陰鬱)케 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作樂崇德 = 악(樂)을 작(作)하고 덕(德)을 높인다」【註十】하니 음악(音樂)을 대작(大作)함은 화기(和氣)를 조장(助長)하여 정기(正氣)를 기르고 사심(邪心)을 막음이오, 공덕(功德)을 포숭(褒崇)함은 경건(敬虔)한 마음을 일으켜서 화예(和豫)를 절제(節制)하고 태심(怠心)을 경계(警戒)함이라. 이와 같이 일변(一邊)으로 화예(和豫)하고 일변(一邊)으로 경건(敬虔)하여 인심(人心)이 스스로 진작(振作)되어 일태(逸怠)에 흐르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다.

구(姤)는 음(陰)이 양(陽)을 우(遇)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광휘(光輝)를 생(生)함이니, 이는 하(夏)의 유형(流形)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 장성(長成)을 위(爲)하여 음양(陰陽)이 상우(相遇)치 아니할 수 없으나, 음(陰)이 점장(漸長)하면 생장(生長)이 정체(停滯)되는 것이므로 또한 상우(相遇)할 수 도 없으니, 이 가우(可遇) 불가우(不可遇)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성극장쇠(盛極將衰)의 시운(時運)을 당(當)하여 폐해(弊害)가 생(生)하기 시작(始作)하는데, 이 추세(趨勢)를 막지 아니할 수도 없고 또한 자연성장(自然成長)의 세(勢)를 막을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施命誥四方 = 명(命)을 시(施)하여 사방(四方)에 고(誥)한다」【註十一】하니, 이는 명령(命令)을 천하(天下)에 발시(發施)하여 사방(四方)에 주고(周誥)하여 인심(人心)을 진칙(振飭)하고 복재(伏在)한 음기(陰氣)를 취산(吹散)하여 써 음특(陰慝)을 소멸(消滅)하고 적폐(積弊)를 배제(排除)하는 것이다.

둔(遯)은 양(陽)이 둔퇴(遯退)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수렴(收斂)을 시작(始作)함이니, 이는 추(秋)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 성숙(成熟)을 위(爲)하여 양(陽)이 둔퇴(遯退)치 아니할 수 없으나, 양(陽)이 둔퇴(遯退)하면 천지(天地)의 기(氣)가 폐색(閉塞)하고 숙살(肅殺)의 기(氣)가 장래(將來)함으로 또한 둔퇴(遯退)할 수도 없으니, 이 가퇴(可退) 불가퇴(不可退)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소인(小人)이 점진(漸進)용사(用事)하여 국사(國事)가 일비(日非)하는데, 현인(賢人)이 퇴장(退藏)치 아니할 수도 없고 또 국사(國事)의 장폐(將廢)함을 목도(目睹)하면서 그를 역구(力救)치 아니하고 홀로 결신퇴피(潔身退避)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遠小人 不惡而嚴 = 소인(小人)을 원(遠)히 하되 오(惡)하지 아니하고 엄(嚴)하게 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소인(小人)을 멀리함에 오성려색(惡聲厲色)으로써 하면 도리어 그 원분(怨忿)을 이르게 하여 화란(禍亂)을 생(生)하는 것이므로, 오직 위신(威信)을 세우고 몸을 장엄(莊嚴)히 가져서 소인(小人)으로 하여금 외경(畏敬)하여 스스로 소원(疎遠)케 하는 것이다.

여(旅)는 양화(陽和)의 기(氣)가 유여(遊旅)하여 천지(天地)가 동한(凍寒)하고 만물(萬物)이 모두 응결(凝結)함이니, 이는 동(冬)의 대화(大和)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의 응결(凝結)을 위(爲)하여 양화(陽和)의 기(氣)가 유여(遊旅)치 아니할 수 없으나, 내부(內部)에 양화(陽和)의 기(氣)를 보합(保合)치 아니하면 신생명(新生命)을 호양(護養)치 못함으로 또한 유여(遊旅)할 수도 없으니, 이 가여(可旅) 불가여(不可旅)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형(刑)은 지냉(至冷)의 정(政)이오, 옥(獄)은 지음(至陰)의 지(地)이니, 음냉(陰冷)은 양화(陽和)의 기(氣)를 상(傷)하는 것이라, 사회(社會)의 질서(秩序)유지(維持)를 위(爲)하여 절옥(折獄)치형(致刑)하던 선왕시대(先王時代)의 형옥(刑獄)을 쓰지 아니할 수도 없고, 또 양화(陽和)의 기(氣)를 보합(保合)하기 위(爲)하여 이를 변통(變通)치 아니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써 「明愼用刑而不留獄 = 형(刑)을 용(用)함을 명(明)히하고 신(愼)하며, 옥(獄)을 유(留)치 아니한다」【註十三】하니, 이는 형벌(刑罰)을 씀에 명찰(明察)하여 원죄(冤罪)가 없게하고, 옥사(獄事)를 민속(敏速)히 처결(處決)하여 엄구체유(淹久滯留)하는 일이 없게 하여 써 사회(社會)의 양화(陽和)생발(生發)의 기(氣)를 보합(保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의(時義)라함은 구사(舊事)가 퇴거(退去)하려하고, 신사(新事)가 장래(將來)하려하는 때에 그 진퇴양난(進退兩難)한 사업(事業)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것이므로 그 의(義)가 극(極)히 대(大)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용(時用)이라함은 그 시(時)의 속에 그를 제(濟)하는 용(用)이 있다 하는 이론(理論)을 말함이오, 시의(時義)라함은 시용(時用)을 찾아서 그 시(時)를 제(濟)하는 실천(實踐)을 말함이니, 예(豫)는 양(陽)의 생장(生長)이, 과도(過度)함을 재제(裁制)함이오, 구(姤), 둔(遯), 여(旅)는 음(陰)의 수장(收藏)이, 과도(過度)함을 재제(裁制)함이다.

註一. 說卦傳 第五章
註二. 睽卦彖傳
註三. 睽卦大象傳
註四. 坎卦彖傳
註五. 坎卦大象傳
註六. 序卦傳上篇
註七. 蹇卦彖傳
註八. 蹇卦大象傳
註九. 豫卦彖傳에 「豫之時義大矣哉」
姤卦彖傳에「姤之時義大矣哉」
遯卦彖傳에「遯之時義大矣哉」
旅卦彖傳에「旅之時義大矣哉」
註十. 豫卦大象傳
註十一. 姤卦大象傳
註十二. 遯卦大象傳
註十三. 旅卦大象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