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4.

삼색과 삼극(三索)(三極) 역학원론


삼색(三索)과 삼극(三極)

원래(元來) 천(天)․지(地)․인(人)을 삼재(三才)라 함은, 상(上)의 천(天)과 하(下)의 지(地)와 그 중간(中間)에 생(生)한 만물(萬物)을 합(合)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동적(動的)으로 볼 때에는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오,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오, 만물(萬物)은 형(形)의 결성(結成)함이니, 기(氣)․정(精)․형(形)의 삼자(三者)가 또한 삼재(三才)의 형태(形態)이다. 그러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여(相與)하여 삼재(三才)로 발전(發展)하는 과정(過程)에는 정(精)과 기(氣)의 혼륜착종(渾淪錯綜)한 작용(作用)을 일으켜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상(象)을 생(生)하는 것이다.

삼색(三索)의 상(象)이라 함은 시간적(時間的)․입체적(立體的) 또는 종적(縱的)으로 발전(發展)함이니,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하여 물(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일색(一索)하여 뇌풍(雷風)의 기(氣)를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장남(長男)․장녀(長女)라 하고, 재색(再索)하여 수화(水火)의 정(精)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중남(中男)․중녀(中女)라하고, 삼색(三索)하여 산택(山澤)의 형(形)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소남(少男)․소녀(少女)라 하니, 이것을 삼색(三索)이라 한다.【註五】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음양성(陰陽性)의 대대(對待)가 신물(新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먼저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상응(相凝)하여 신물(新物)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나니, 이가 곧 삼색(三索)의 상(象)이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있어서는 처음에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여 연모(戀慕)가 생(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여 잉태(孕胎)가 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응결(凝結)하여 차세대(次世代)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는 것이며, 사람의 사업(事業)같은 것도 처음에 계획(計劃)의 수립(樹立)은 기(氣)의 감응(感應)함이고, 다음에 기구(機構)의 조직(組織)은 정(精)의 취합(聚合)함이오, 그 다음에 실천(實踐)의 결실(結實)은 형(形)의 생성(生成)함이니,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발생(發生)에는 어느 하나도 이 삼색(三索)의 순서(順序)를 밟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삼극(三極)의 상(象)이라 함은 공간적(空間的)․평면적(平面的) 또는 횡적(橫的)으로 관섭(關涉)함이니, 여기에는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 등(等), 세 가지 형태(形態)가 있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에는 모두 양극(兩極)이 있으니, 유(幽)와 명(明)은 지(地)의 주야(晝夜)의 양극(兩極)이오, 사(死)와 생(生)은 인(人)의 일생(一生)의 양극(兩極)이오, 귀(鬼)와 신(神)은 천(天)의 조화(造化)의 양극(兩極)이며, 또 음(陰)과 양(陽)은 천(天)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유(柔)와 강(剛)은 지(地)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인(仁)과 의(義)는 인(人)의 도(道)의 양극(兩極)이니【註六】, 물(物)의 운동(運動)이 천지인(天地人)의 각(各)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을 삼극(三極)의 도(道)라 한다.【註七】

능동과 수동 能動 受動 역학원론

能動과 受動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기(氣)는 모두 발동작용(發動作用)을 행(行)함으로 기(氣)와 기(氣)가 상대(相對)하는 때는 양자(兩者)가 서로 발동(發動)하려하여 스스로 서로 추척(推斥)하고 서로 견인(牽引)하나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八】함은,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動靜有常 = 동(動)하고 정(靜)함이 상(常)이 있다」【註九】함은, 동(動)은 능동(能動)이오 정(靜)은 수동(受動)으로서 동정(動靜)함이 상도(常道)가 있다 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추척(推斥)과 견인(牽引)과의 상대(相對)는 또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로 되어, 기(氣)의 운동(運動)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수동(受動)은 체(體)가 되고 능동(能動)은 용(用)이되어, 능동(能動)이 없으면 수동(受動)이 있을 수 없고 또 수동(受動)이 없으면 능동(能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나니, 역(易)에「剛柔相易 不可爲典要 惟變所適 = 강유(剛柔)가 서로 역(易)하여 가(可)히 전요(典要)를 삼지 못하고 오직 변(變)의 적(適)하는 바이라」【註十】하니, 전요(典要)라 함은 상례(常例)의 뜻이라, 역(易)의 도(道)는 강유(剛柔)의 위(位)와 작용(作用)이 서로 환역(換易)하여 고정(固定)한 상례(常例)가 없고 오직 변화(變化)함을 따른다 함이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아(我)가 능동(能動)하여 타(他)에 발시(發施)하면 타(他)는 수동(受動)하여 그를 승수(承受)하고, 그 승수(承受)하는 작용(作用)이 다시 능동(能動)으로 전화(轉化)하여 아(我)에 발시(發施)하고 아(我)는 수동(受動)으로 변화(變化)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인 아(我)는 한번은 능동(能動)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번은 수동(受動)의 위(位)에 입(立)하여 소위(所謂)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반복(反復)하면서 한(限)없는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소장(消長)․성쇠(盛衰)와 왕고래금(往古來今)의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이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반복(反復)이다.

개체와 통체(個體)(統體)-역학원론

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라 함은 만물(萬物)의 정(精)은 모두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함으로 정(精)과 정(精)이 상대(相對)하는 때는 서로 적응(適應)하여 相與치 못하고, 오직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교호작용(交互作用)으로써 서로 관섭(關涉)이 생(生)하나니, 역(易)에「水火不相射 = 수(水)와 화(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한다」【註十一】함은,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인데, 정(精)의 작용(作用)은 취합(聚合)하면 형(形)을 이루어 통체(統體)가 되고 발산(發散)하면 기(氣)로 화(化)하여 개체(個體)가 되는 것이므로 역(易)에「方以類聚 物以群分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하고 물(物)은 군(群)으로써 분(分)한다」【註十二】하니 유(類)로써 취(聚)함은 통체(統體)를 이루는 것이오, 군(群)으로써 분(分)함은 개체(個體)로 화(化)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상대(相對)는 스스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로 되어, 개체(個體)는 물(物)의 구성요소(構成要素)가 되고 통체(統體)는 각개체(各個體)가 취합(聚合)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통일체(統一體)가 되는 것이며, 정(精)의 운동(運動)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개체(個體)는 체(體)가 되고 통체(統體)는 용(用)이 되어 개체(個體)가 없으면 통체(統體)는 성립(成立)되지 못하고 또 통체(統體)가 없으면 개체(個體)는 고립(孤立)하여 생존(生存)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개체(個體)와 통체(統體)는 시(時)와 처지(處地)의 변화(變化)에 따라서 주객(主客)의 위(位)가 항상(恒常) 이역(移易)하나니, 만물(萬物)은 모두 한편으로는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하는데,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개체(個體)는 주(主)가 되고 통체(統體)는 객(客)이 되며,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통체(統體)는 주(主)가 되고 개체(個體)는 객(客)이 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이 한편으로는 주(主)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객(客)의 위(位)에 입(立)하여 주객(主客)의 위(位)가 서로 전도(轉倒)되는 것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사적생활(私的生活)이라 함은 개체(個體)의 위(位)이오, 공적생활(公的生活)이라 함은 통체(統體)의 위(位)이니, 이 사적생활(私的生活)과 공적생활(公的生活)의 착종(錯綜)으로 인(因)하여 지잡(至雜)한 양상(樣相)과 지동(至動)하는 변화(變化)를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분합(分合)․취산(聚散) 등(等)은 이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교착(交錯)이다.

안정과 발용(安貞)(發用)역학원론

안정(安貞)과 발용(發用)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이라 함은, 정(精)은 지정(止靜)하고 기(氣)는 발동(發動)함으로 기(氣)는 정(精)에 의착(依着)하고 정(精)은 기(氣)의 고무(鼓舞)로써 동작(動作)하여 호상의부(互相依附)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이니 역(易)에「山澤通氣 = 산(山)과 택(澤)이 기(氣)를 통(通)한다」【註十三】함은,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卑高以陳 = 비(卑)와 고(高)가 써 진(陳)한다」【註十四】함은 산(山)은 고(高)하고 택(澤)은 비(卑)하여 고저(高低)의 차등(差等)이 있으나 산(山)은 안정(安貞)하고 택(澤)은 발용(發用)하여 수(水)가 산정(山頂)에까지 통(通)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형체(形體)의 조직(組織)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호근관계(互根關係)로 되어 안정(安貞)은 현상(現狀)을 항구(恒久)히 유지(維持)하려 하여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하고 발용(發用)은 현상(現狀)을 부단(不斷)히 변개(變改)하려하여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정(精)과 기(氣)의 운동(運動)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안정(安貞)은 체(體)가 되고 발용(發用)은 용(用)이 되어, 안정(安貞)만 있고 발용(發用)이 없으면 물(物)의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고, 또 발용(發用)만 있고 안정(安貞)이 없으면 물(物)이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자체(自體)를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현상(現狀)인 현실(現實)은 안정(安貞)의 위(位)이오, 시(時)의 추이(推移)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발전(發展)하고 나가는 미래(未來)는 발용(發用)의 위(位)인데, 만물(萬物)은 현실(現實)을 떠날 수가 없고 또 미래(未來)를 향진(向進)치 아니할 수도 없어, 동일(同一)한 물(物)이 한편으로는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하여,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발용(發用)하는 작용(作用)을 견제(牽制)하고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안정(安貞)하는 작용(作用)을 추척(推斥)하며, 이리하여 현실(現實)은 정지(停止)하고 이상(理想)은 행진(行進)하며 다시 정지(停止)하던 현실(現實)은 행진(行進)하고 행진(行進)하던 이상(理想)은 정지(停止)하여 무한(無限)히 앞으로 행진(行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진퇴(進退)․굴신(屈伸) 등(等)은 이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련(關聯)이다.

삼대용(三對用)의 착종(錯綜)--삼색과 삼극(三索)(三極) (역학원론 한장경 저)



삼대용(三對用)의 착종(錯綜)

이와같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삼재운행(三才運行)에 의(依)하여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작용(作用)을 생(生)하는데, 양기(兩氣)의 상감(相感)․양정(兩精)의 상취(相聚)․정기(精氣)의 성형(成形) 등(等) 삼대용(三對用)은 비록 그 형태(形態)는 서로 다르나, 삼대용(三對用)의 본원(本源)이 되고 있는 정(精)과 기(氣)가 서로 혼륜(渾淪)하고 있으므로 삼대용(三對用)도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것이 아니오 서로 착종(錯綜)하고 있으니,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삼대용(三對用)의 혼륜(渾淪)한 상(象)을 사회생활(社會生活)의 예(例)로 써 보건대, 개인(個人)과 사회(社會)가 혼륜(渾淪)하고 있음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가 되고, 세력(勢力)과 세력(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함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가 되고,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호근(互根)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계(關係)가 되는 것이다.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이(變異)와 왕래불측(往來不測)하는 흥폐(興廢)․존망(存亡)이 생(生)하는 것은 실(實)로 이 삼대용(三對用)이 통일체내(統一體內)에 착종(錯綜)되어 있는 까닭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繫辭上傳 第六章
註三. 說卦傳 第一章
註四. 老子道德經
註五. 說卦傳 第十章의 뜻을 해설(解說)한 것이니, 乾坤震巽坎離艮兌의 팔괘(八卦)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건(乾)을 부(父)라 하고, 곤(坤)을 모(母)라 하고, 진(震)을 장남(長男)이라 하고, 손(巽)을 장녀(長女)라 하고, 감(坎)을 중남(中男)이라 하고, 이(離)를 중녀(中女)라 하고, 간(艮)을 소남(少男)이라 하고, 태(兌)를 소녀(少女)라 하니, 장(長)은 선(先)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중(中)은 중(中)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소(少)는 말(末)에 생(生)함을 상(象)함이라, 장남(長男)․장녀(長女)는 뇌(雷)와 풍(風)이니 곧 기(氣)이오 중남(中男)․중녀(中女)는 수(水)와 화(火)이니 곧 정(精)이오 소남(少男)․소녀(少女)는 산(山)과 택(澤)이니 곧 형(形)이다. 이 장중소(長中少)의 선(先) 중(中) 말(末) 순서(順序)는 또한 기(氣)․정(精)․형(形)의 출생순서(出生順序)와 명합(冥合)하는 것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의 幽明․死生 鬼神과 說卦傳 第二章의 陰陽․柔剛․仁義
註七. 繫辭上傳 第二章
註八. 說卦傳 第三章
註九.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 繫辭下傳 第八章
註十一. 說卦傳 第三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三. 說卦傳 第三章
註十四. 繫辭上傳 第一章

  

감응은 괴위중의 상교(感應)(乖違中)(相交) 역학원론

감응(感應)은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그 형체(形體)는 상괴상위(相乖相違)하면서 그 기(氣)는 상감상응(相感相應)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니, 천지(天地)의 이기(二氣)가 감응(感應)하여 만물(萬物)을 화순(化醇)하고 빈모자웅(牝牡雌雄)이 상교(相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창조(創造)하고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이 상응(相應)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것 등(等)이 모두 감응(感應)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감응(感應)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운행(運行)은 생생불궁(生生不窮)하기 위(爲)하여 부모(父母)를 계대(繼代)할 신물(新物)을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신물(新物)을 생(生)하기 위(爲)하여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對待)라 함은 그 체(體)는 서로 괴위(乖違)하면서 그 정(情)은 서로 교합(交合)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한 때에 그 용(用)이 상교(相交)하고 체(體)의 괴위(乖違)가 없으면 용(用)의 상교(相交)도 없나니, 이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가 곧 감응(感應)이다.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은 그 신체(身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으로 그 지(志)가 상통(相通)하고, 자기(磁氣)와 전기(電氣) 등(等)이 동일(同一)한 음극(陰極)과 동일(同一)한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상동(相同)함으로 그 용(用)이 상척상배(相斥相背)하고 있으나, 음극(陰極)과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함으로 그 용(用)이 감응(感應)하여 상인(相引)하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며, 감응(感應)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정(情)이 되고 있으므로 비록 우매무지(愚昧無知)한 충어조수(虫魚鳥獸)도 능(能)히 교정(交情)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아무 의식(意識)이 없는 초목(草木)도 능(能)히 교배(交配)의 기능(機能)을 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생(生)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는때에 가장 화기(和氣)를 생(生)하는 것이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한 연후(然後)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생(生)하나니, 역(易)에「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寒暑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伸也 屈伸相感而利生焉 = 일(日)이 왕(往)한즉 월(月)이 내(來)하고 월(月)이 왕(往)한즉 일(日)이 내(來)하여 일월(日月)이 상추(相推)하여 명(明)이 생(生)하고, 한(寒)이 왕(往)한즉 서(暑)가 내(來)하고 서(暑)가 왕(往)한즉 한(寒)이 내(來)하여 한서(寒暑)가 상추(相推)하여 세(歲)가 성(成)하나니, 왕(往)하는 자(者)는 굴(屈)함이오 내(來)하는 자(者)는 신(伸)함이니 굴신(屈伸)이 상감(相感)하여 이(利)가 생(生)한다」【註一】 하니, 이(利)라 함은 의(義)의 화(和)함이니 곧 사물(事物)이 적의(適宜)히 재성(裁成)되어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얻음이라, 이는 일월(日月)과 한서(寒暑)의 왕래굴신(往來屈伸)이 상감(相感)하는 까닭에 광명(光明)이 생(生)하고 일세(一歲)가 이루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모두 조화(調和)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감(感)하매 천하(天下)가 화평(和平)하다」【註二】하여,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시킴으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감응(感應)하여 화평(和平)함을 얻음을 말함이다. 그리하여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함에는「君子居其室 出其言 善則千里之外應之 况其邇者乎 居其室出其言 不善則千里之外違之 况其邇者乎 言出乎身加乎民 行發乎邇見乎遠 言行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 군자(君子)가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선(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응(應)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불선(不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위(違)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언(言)은 신(身)에서 출(出)하여 민(民)에 가(加)하고 행(行)은 이(邇)에서 발(發)하여 원(遠)에 나타나나니, 언행(言行)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오 추기(樞機)의 발(發)함은 영욕(榮辱)의 주(主)이라, 언행(言行)은 군자(君子)가 써 천지(天地)를 동(動)하는 바이니 가(可)히 신(愼)치 아니하랴」【註三】하니, 이는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사람의 언동(言動)과 행위(行爲)는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하는 추(樞)가 되고 기(機)가 되어, 추(樞)가 동(動)하매 호(戶)가 개(開)하고 기(機)가 동(動)하매 시(矢)의 발(發)함과 같이, 그의 언행(言行)은 비록 자기(自己)의 일신(一身)에서 출발(出發)하되 그 언성(言聲)과 행적(行迹)은 멀리 민중(民衆)에 향응(響應)하는지라, 그 언행(言行)의 선불선(善不善)은 곧 민심(民心)에 감응(感應)되어 소(小)하기는 일신(一身)의 영욕(榮辱)을 초래(招來)하고, 대(大)하기는 능(能)히 천지(天地)를 감동(感動)함을 말함이다.
  

일음일양의 상배(一陰一陽)(相配) 역학원론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상배(相配)

그런데 감응작용(感應作用)은 오직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대대(對待)하여 하나는 발시(發施)하고 하나는 승수(承受)함으로써 행(行)하고, 만일 그 중간(中間)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여 삼각관계(三角關係)를 이루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파괴(破壞)되어 감응(感應)이 행(行)치 못하고 시의(猜疑)가 생(生)하며 따라서 화기(和氣)를 손상(損傷)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조해(阻害)되나니, 역(易)에 음양(陰陽)의 상여관계(相與關係)를 말하되 「三人行則損一人 一人行則得其友 言致一也 = 삼인(三人)이 행(行)한즉 일인(一人)을 손(損)하고, 일인(一人)이 행(行)한즉 그 우(友)를 득(得)하나니 이는 치일(致一)함을 말함이라」【註四】하고, 또 「三則疑也 = 삼(三)한즉 의(疑)한다」【註五】하니, 이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양인(兩人)이 상여(相與)하는 때에 그 심지(心志)가 일치(一致)하고 그 행동(行動)함이 전일(專一)한 것이오, 만일 삼각(三角)이 되면 한편으로는 그 상여(相與)할바를 미혹(迷惑)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시의(猜疑)를 생(生)하여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의 예(例)로써 보면 남성(男性)은 용(用)이오 여성(女性)은 체(體)이라, 부부(夫婦)의 감응(感應)은 오직 체용(體用)이 대대(對待)하는 일부일부(一夫一婦)제(制)가 있을 뿐이오, 그 사이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면 간위(姦僞)가 되어 가정(家庭)의 화기(和氣)를 파괴(破壞)하는 것이며,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행정부(行政府)는 용(用)이오, 민중(民衆)은 체(體)이라, 정치(政治)는 오직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이 대대(對待)하여 상의(上意)가 하달(下達)하고 하의(下意)가 상창(上暢)하여 서로 감응(感應)하여 고락(苦樂)과 안위(安危)를 한가지로 할 것이오, 만일 그 중간(中間)에 권력(權力)이나 부력(富力)을 가진 소위(所謂)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존재(存在)하여,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으로 더불어 삼각형태(三角形態)를 이루면, 그것이 상(上)으로 상부(上部)에 아첨(阿諂)하여 정령(政令)의 발시(發施)를 견제(牽制)하고 하(下)로 하민(下民)을 억압(抑壓)하여 민심(民心)의 창달(暢達)을 장색(障塞)하여, 써 상하(上下)의 감응작용(感應作用)을 조해(阻害)하고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나니, 이는 곧 사회(社會)의 간위(姦僞)이다. 고래(古來)의 정치탁란사(政治濁亂史)를 더듬어 보면 그 원인(原因)이 군주(君主)의 포학(暴虐)․혼암(昏暗)에 있느니보다 오히려 이러한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중간(中間)에 개재(介在)하여 상(上)으로 군주(君主)의 총명(聰明)을 옹폐(壅蔽)하여 간부(姦婦)노릇을 하고 하(下)로 민중(民衆)의 의사(意思)를 억제(抑制)하여 간부(姦夫)노릇을 한데에 그 원인(原因)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간(易簡)의 이(理) (역학원론 한장경 저)



이간(易簡)의 이(理)

그러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에는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으니, 역(易)에 「乾知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하며, 건(乾)은 이(易)로써 지(知)하고 곤(坤)은 간(簡)으로써 능(能)하며, 이(易)한즉 지(知)하기 쉽고 간(簡)한즉 종(縱)하기 쉬우며, 지(知)하기 쉬운즉 친(親)함이 있고 종(從)하기 쉬운즉 공(功)이 있으며 친(親)함이 있은 즉 가(可)히 구(久)하고 공(功)이 있은 즉 가(可)히 대(大)하며, 가(可)히 구(久)한즉 현인(賢人)의 덕(德)이오, 가(可)히 대(大)한즉 현인(賢人)의 업(業)이라」【註六】하니,

지(知)라 함은 의(義)의 정(精)함이니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적의(適宜)히 재성(裁成)하는 뜻이라, 이는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물(物)을 대시(大始)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물(物)을 작위(作爲)하여 형질(形質)을 조성(造成)하는데, 양성(陽性)은 평이(平易)한 작용(作用)으로 써 주편(周遍)하고 음성(陰性)은 간약(簡約)한 작용(作用)으로 써 능사(能事)하는지라, 평이(平易)하면 주편(周遍)하기 쉽고 간약(簡約)하면 응종(應從)하기 쉬우며, 주편(周遍)하기 쉬우면 더불어 동심(同心)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친화(親和)가 있고, 응종(應從)하기 쉬우면 더불어 협력(協力)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실공(實功)이 있으며, 친화(親和)가 있으면 서로 잔해(殘害)함이 없음으로 가(可)히 장구(長久)하고, 실공(實功)이 있으면 사업(事業)이 점점(漸漸) 적성(積成)함으로 가(可)히 확대(擴大)하는 것이니, 이러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일신(日新)의 성덕(盛德)이 행(行)하고 부유(富有)의 대업(大業)이 이루어짐을 말함이니, 곧 음양작용(陰陽作用)의 이간(易簡)의 이(理)를 인사(人事)에 의(擬)함이다. 발시(發施)하는 정령(政令)이 평이(平易)하고 가번(苛繁)치 아니하면 민중(民衆)에 주편(周遍)하기 쉬워서 상하(上下)가 친화(親和)하여 사회(社會)가 일신(日新)하고, 승수(承受)하는 민심(民心)이 간약(簡約)하고 번요(煩擾)치 아니하면 정령(政令)을 응종(應從)하기 쉬워서 실천(實踐)의 공(功)이 이루어, 사회(社會)가 부유(富有)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다시 이간(易簡)의 뜻을 말하되 「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廣大配天地 易簡之善配至德 = 그 건(乾)은 그 정(靜)하매 전(專)하고 그 동(動)하매 직(直)한지라 이로써 대(大)가 생(生)하고, 그 곤(坤)은 그 정(靜)하매 흡(翕)하고 그 동(動)하매 벽(闢)한지라 이로써 광(廣)이 생(生)하나니, 광대(廣大)는 천지(天地)에 배(配)하고 이간(易簡)의 선(善)은 지덕(至德)에 배(配)한다」【註七】하니, 건곤(乾坤)이라 함은 천지(天地)․남녀(男女) 등(等) 모든 음양성(陰陽性)의 체성(體性)을 상(象)함이라,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전일(專一)하여 하등(何等)의 사사(私邪)가 없고 그 동(動)하매 강직(剛直)하여 하등(何等)의 왜곡(歪曲)이 없으므로 발시작용(發施作用)이 극(極)히 평이(平易)하여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는 대(大)를 생(生)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보흡(保翕)하여 스스로 염장(斂藏)하고 그 동(動)하매 벽통(闢通)하여 스스로 수용(受容)함으로 승수작용(承受作用)이 극(極)히 간약(簡約)하여 만물(萬物)을 포함(包涵)하는 광(廣)을 생(生)하는데, 이간작용(易簡作用)의 광대(廣大)함은 천지(天地)와 같고 그 선(善)함은 천지(天地)의 지덕(至德)과 같다 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작용(作用)은 오직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을 뿐이라 사회(社會)에 있어서도 정령(政令)이 전직(專直)하여 일호사곡(一毫私曲)의 형(形)이 없으면 스스로 평이(平易)하고, 민심(民心)이 흡벽(翕闢)하여 일점강작(一點强作)의 적(迹)이 없으면 스스로 간약(簡約)하나니 이를 이간정치(易簡政治)라 하고, 이간정치(易簡政治)는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최대(最大)의 선(善)이되고, 최성(最盛)의 도덕(道德)이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면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스스로 험조(險阻)가 생(生)하나니, 험조(險阻)라 함은 역(易)에「夫乾 天下之至健也 德行恒易而知險 夫坤 天下之至順也 德行恒簡而知阻 = 그 건(乾)은 천하(天下)의 지건(至健)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이(易)하여 험(險)함을 지(知)하고, 그 곤(坤)은 천하(天下)의 지순(至順)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간(簡)하여 조(阻)함을 지(知)한다」【註八】하니. 양성(陽性)은 건(健)함으로 직(直)하여 간험(艱險)함이 없이 평이(平易)하니 양성(陽性)의 동(動)함이 직(直)치 못하면 험(險)이 되고, 음성(陰性)은 순(順)함으로 벽(闢)하여 조색(阻塞)함이 없이 간약(簡約)하나 음성(陰性)의 동(動)함이 벽(闢)치 아니하면 조(阻)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수록 법령(法令)의 조문(條文)이 평이(平易)하고 간약(簡約)하여 민중(民衆)에게 주편(周遍)되기 쉽고, 또 민중(民衆)도 법령(法令)을 이해(理解)하여 실천(實踐)하기 쉬운 것이며, 정치(政治)가 험조(險阻)할수록 법령(法令)이 번가(繁苛)하여 천장만조(千章萬條)의 법문(法文)과 호분루석(毫分縷析)한 규정(規定)이 민중(民衆)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고래(古來)로 법령(法令)이 평이(平易)․간약(簡約)함으로 인(因)하여 정치(政治)가 선행(善行)치 못한 예(例)가 없으니, 이는 민중(民衆)은 항상(恒常) 법령(法令)을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법령(法令)이 아무리 이간(易簡)하더라도 그를 농간(弄奸)하는 자(者)는 민중(民衆)이 아니라, 도리어 법령(法令)을 만들어 내고 법병(法柄)을 잡고 있는 자(者)가 먼저 농간(弄奸)하는 것이니 집법자(執法者)가 직(直)하고 정치(政治)가 또 직(直)하면 아무런 농간(弄奸)도 없이 스스로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여 지는 까닭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 직(直)을 거(擧)하고 왕(枉)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고 왕(枉)을 거(擧)하고 직(直)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지 아니한다」하니, 이는 정직(正直)함을 좋아하고 왕곡(枉曲)함을 싫어함은 천하(天下)의 지정(至情)이라, 이 인정(人情)에 순응(順應)하여 정직(正直)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정직(正直)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통개(通開)하여 복종(服從)하고, 그와 반대(反對)로 인정(人情)에 역행(逆行)하여 왕곡(枉曲)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왕곡(枉曲)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폐격(閉隔)하여 복종(服從)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직(直)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민심(民心)에 직통(直通)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咸卦彖傳
註三. 繫辭上傳 第八章
註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五. 損卦六三爻 小象傳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繫辭上傳 第六章
註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九. 論語 爲政篇